‘비상계엄 위헌·위법’ 윤석열 탄핵 1년
사법은 결론냈지만 정치는 멈췄다
헌재·법원 ‘위헌·내란’ 판단 … 책임 회피 속 정치적 갈등 반복
1년 전, 경찰버스 200여대가 둘러싼 이른바 ‘진공상태’의 헌법재판소 앞 150m는 텅 비워져 있었다. 탄핵 선고를 앞두고 집회와 접근이 전면 통제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서울 도심은 응원봉으로 상징되는 대규모 집회로 채워졌고, 전국에서 수백만명이 거리로 나와 탄핵을 요구했다.
탄핵은 시민 참여로 시작돼 사법 판단으로 확정된 헌정 질서의 작동이었다. 헌정 위기 상황에서 시민 참여와 사법 판단이 결합해 권력 책임을 묻는 구조가 작동한 사례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1년 뒤 같은 장소에 다시 사람들이 모인다. 비워졌던 공간은 채워지지만 광장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있다. 국민의 힘으로 이뤄진 탄핵이 사법 판단으로 확정됐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갈등은 정리되지 못했다.
탄핵 1주년을 맞는 4일 헌재 인근에서는 진보·보수 단체들이 각각 집회를 연다. 한쪽은 ‘내란 청산’과 ‘사회 대개혁’을, 다른 한쪽은 ‘윤 어게인’을 내걸고 같은 공간으로 향한다.
◆다시 열린 광장, 갈라진 흐름 = 광장은 1년 전에도 탄핵 찬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파면’이라는 단일 목표 아래 시민 참여가 수렴되는 흐름이 강했다. 응원봉 집회는 주권자 행동의 상징이었고, 실제 권력 교체로 이어진 압력으로 작용했다.
응원봉으로 상징되던 참여는 ‘내란 단죄’와 ‘개혁 완성’ 등으로 의제가 확장됐다. 시민 참여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정치 요구로 정치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탄핵 이후 광장은 단순한 집회 공간을 넘어 정치 의제를 형성하고 압박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태극기를 앞세운 탄핵 반대 집회에는 최대 11만명 이상(경찰 추산)이 모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에도 일부는 광화문과 여의도 등에서 ‘윤 어게인’을 외쳐왔지만, 내부 분화와 재편을 반복하며 결집력이 약화된 모습이다.
사법의 결론은 이미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을 결정했고, 1심 법원도 계엄 선포와 국회 군 투입을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으로 판단했다. 위헌성과 내란 여부는 사법 절차를 통해 명확히 확인됐다.
그럼에도 윤 전 대통령은 재판 과정에서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사과나 책임 인정 없이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일부 지지층도 사법 판단을 부정하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헌정 질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민단체들도 “내란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 “제대로 단죄되지 않았다”며 추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정당성 회복’을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사건을 두고 상반된 해석이 병존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사법 판단이 존재함에도 정치가 이를 정리하지 못하면서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권력 균열, 그리고 정치 공백 = 탄핵 이후 권력 구조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대통령 권력의 불가침성은 약화됐고, 권력 작동 방식에 대한 문제도 드러났다. 사법부 영향력은 확대됐지만 개혁 요구도 동시에 커졌다.
정치권 역시 재편 과정에 있지만, 문제는 정치 기능의 미작동이다. 갈등을 제도권 안에서 조정해야 할 정치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다. 사법이 결론을 낸 이후 이를 사회적 합의로 연결해야 할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갈등은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논쟁은 다시 광장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국력 역시 분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 추진과 사회적 자원이 갈등 대응에 소모되면서 국가 운영의 효율이 저하되고, 정치·경제 전반의 의사결정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광장은 상시적 정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시적 집회를 넘어 정기적 정치 행위가 이어지고, 일부는 정치 참여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 신뢰가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전문가들은은 “사법 판단 이후 정치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불신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갈등은 구조화 단계에 들어섰다. 각 진영은 서로 다른 인식과 서사를 기반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합의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사법은 결론을 냈고, 그 출발점은 국민이었다. 그러나 그 결론을 완성해야 할 정치가 멈춰 서면서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답을 내놓아야 할 주체는 정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