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 작렬’ 트럼프…나토 압박 본격화

2026-04-09 13:00:05 게재

비협조국 미군철수·기지폐쇄 검토

동맹을 ‘거래 대상’으로 재정의

유럽 넘어 한국·일본까지 영향권

루비오·뤼터 회동…나토 협력·안보 대응 논의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오른쪽)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이 기념 촬영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측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안보 불안과 에너지 공급 차질 문제를 포함해 나토 동맹 차원의 대응과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겨냥해 전례 없는 수준의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동 전쟁 과정에서 동맹국들이 미국의 군사 요청에 충분히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주둔 미군 재배치와 기지 폐쇄, 나아가 경제·무역 연계 조치까지 검토하면서 대서양 동맹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참모진과 함께 ‘동맹 기여도 재평가’ 작업을 진행하며 협조 여부에 따라 군사 자산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정 국가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대신 중동 전쟁에 적극 협력한 국가로 병력을 이동시키는 구상이다. 단순한 병력 조정이 아니라 동맹 관계를 ‘조건부 계약’처럼 재설계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유럽 전역에는 약 8만4000명 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들은 북대서양 방위뿐 아니라 중동·아프리카·동유럽 작전의 핵심 축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 병력을 더 이상 ‘고정된 동맹 자산’이 아닌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 검토 대상에는 스페인과 독일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은 나토 내 방위비 분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데다 중동 전쟁 당시 미군 항공기의 영공 사용 요청을 거부해 워싱턴의 강한 반발을 샀다. 독일 역시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는 공개 발언을 통해 미국의 군사 행동을 비판하며 갈등을 노출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는 “동맹의 혜택은 누리면서 책임은 회피한다”는 불만이 누적돼 온 것으로 전해진다.

폴란드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그리스 등은 호르무즈 해협 감시를 위한 국제 연합군 구상에 비교적 신속하게 지지를 표명하며 ‘우호국’으로 분류된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 위협을 이유로 미국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해 온 만큼 미군 재배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동유럽으로 병력이 이동할 경우 러시아 견제 전략과도 맞물려 지정학적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

백악관은 이날 나토를 향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캐럴라인 레빗 대변인은 “나토는 시험대에 올랐고 실패했다”며 “지난 6주 동안 미국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동맹은 등을 돌렸다”고 비판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나토 국가들이 군사적 지원 요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데 대한 공개적인 문제 제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는 나토를 “종이호랑이”라고 표현하며 집단방위 체제 자체를 흔드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고 참모진과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 탈퇴는 미 의회 상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이러한 언급 자체가 동맹국들에 강한 압박 메시지로 작용하고 있다.

주목되는 대목은 이러한 압박이 유럽에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한국과 일본, 호주 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에 대한 소극적 대응에 불만을 표출해왔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 재배치 가능성까지 거론되지만 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간접 압박’이다. 군사 협조 여부를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무역 협상 조건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동맹국을 상대로 ‘안보는 비용, 비용은 협상’이라는 접근법을 취해왔다. 이번에도 이란 전쟁 협조 문제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에 일종의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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