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제 ‘관리된 K-평화전략’으로 재구성할 때다

2026-04-14 13:00:01 게재

오늘날 세계는 ‘힘(power)의 논리’가 다시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과 중동전쟁은 군사력이 여전히 국제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변수임을 보여준다.

칼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을 정치의 연속으로 보았듯, 평화 역시 정치와 전략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안보와 평화를 대립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여전히 뿌리 깊다. “안보를 강조하면 평화가 약화되고, 평화를 말하면 안보가 흔들린다”는 이분법적 논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복합안보 시대에 전략적 합리성을 결여한다.

오늘날 한반도는 70년 넘게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시적 예외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평화는 안보에 종속된 ‘무장된 평화’의 성격을 띤다. 냉전기에 형성된 반공 이데올로기의 잔재는 평화를 불신과 위협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이는 시대변화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지연시키며 분단을 고착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로 인해 우리의 평화담론은 왜곡된 인식 속에 머문 채 보편적 평화개념은 물론, 전후(戰後) 한반도 평화질서 구축에 대한 건전한 공론 형성마저 저해하고 있다.

통일보다 ‘평화적 공존’으로 국민인식 변화

최근 북한은 남북대화를 전면 차단한 채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적대적 두 국가 노선’ 강화를 통해 분단의 구조화를 심화시키는 한편, 중국·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전략적 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다만 최근 대외 메시지에서 나타나는 이중적 태도는 대외환경에 따라 변화의 여지가 열려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평화적 두 국가’ 접근을 통해 갈등 관리와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정부의 ‘엔드(END) 정책’은 긴장 완화와 단계적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로 군사적 억제력과 외교적 접근을 결합한 ‘관리된 평화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평화는 정부 정책의 설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민적 공감과 사회적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의 추진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안보와 평화를 이념적으로 대립시키는 경로 의존성이 여전히 강하다. 이러한 이중사고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평화 전략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우리 국민 인식의 변화다. 통일보다 ‘평화적 공존’을 우선시하는 여론의 확산은 이상적 통일담론보다 ‘관리 가능한 평화’가 현실적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화는 안보의 당연한 결과물이 아니라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향후 대북정책 방향 설정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이러한 국민 정서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정부의 평화구상에 대한 왜곡과 과도한 확대 해석은 성숙한 공론 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평화에 대한 보편적 인식 확산과 ‘관리된 평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다. 칼은 칼집 속에 있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듯 군사력 역시 존재 자체로 억제력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연중 분산 훈련을 ‘훈련 축소’로, 평화공존을 ‘저자세 외교’라고 비판한다.

안보와 평화 ‘관리된 균형’으로 재구성 해야

이제 우리는 안보와 평화를 대립이 아닌 ‘관리된 균형’의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국방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 중요하다. 강한 군대가 평화를 지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도 그 힘의 목적이 전쟁억제와 평화유지에 있음을 일관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동시에 보여주기식 발언이나 훈련을 지양하고 남북이 평화공존을 통해 안정과 번영의 경험을 축적하고 그 성과를 체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설계하고 구축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제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에 대비해라’라는 명제가 더 이상 낯선 구호가 아니라 ‘K-평화’ 철학과 제도, 그리고 평화전략을 구현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임명수 이화여대 특임교수 안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