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깃발, 소리 없는 노이즈

2026-04-16 13:00:04 게재

바람이 분다. 지방선거가 눈앞이다. 50일도 안 남았다. 여기저기 출마자들이 깃발을 흔든다. 헌데 색깔도 글씨도 흐릿하다. 초록동색이거나 농담만 다른 무채색이다. 그러니 깃발이 펄럭여도 ‘소리 없는 아우성’조차 없다. 울림이 없는 거다. 표심도 잔잔하다. “골라, 골라” 외쳐도 힐끗 보고는 지나친다. 시민들은 10대 0이냐, 9대 1이냐 내기 건다. 지자체장 후보 경선에서 여당은 현역 전패, 야당은 현역 불패인 배경이다. 흥이 날 리 없다.

오히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눈길을 끈다. 조국혁신당 조 국은 평택을, 국민의힘 출신 한동훈은 부산북갑에 깃발을 꽂았다. 부산갈매기 조가 부산을 떠나고 검사로 3년 근무한 인연 뿐인 한이 발을 들였다.

대신 우회 대결이 됐다. 변수는 있다. 둘 다 제3당과 무소속이다. 평택을은 단일화가 관건이다. 부산북갑은 무공천이 이슈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후보를 낼지, 이른바 자객 공천을 할지 여부에 판세가 흔들릴 전망이다.

조의 깃발은 “내란 완전 종식, 진짜 개혁 완수”이다. 속 뜻이 묘하다. “내란은 종식됐지만 완전하지 않다. 개혁도 완수됐지만 진짜가 아니다”는 걸까.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듯하다.

한의 깃발은 “보수 재건”이다. 자신을 제명한 국민의힘을 접수해 진정한 보수 정당으로 재건축하겠다는 거다. 윤 어게인 세력을 일소하고 권토중래하겠다는 심산이다.

국회의원 재보궐 대결이 눈길 끄는 선거

김 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빈소를 찾은 한이 말했다. “대구는 보수의 본진으로서 김이 빠졌다. 그저 관성에 젖어 있다. 부산은 역동적이다. 1992년 김영삼을 마지막으로 이후 보수 후보를 내지 못했다. 2030년 대선에서 38년만에 보수 후보를 내고, 보수의 새로운 본진으로 부상시키겠다.”

나름대로 꿈이 야무지다. “설령 떨어진다 해도 이제 겨우 50대 초반이다. 부산 북구는 고 노무현 대통령도 고배를 든 지역이다. 비슷한 서사가 되지 않겠나.” 글쎄다. 현역 지역구인 서울 종로를 버리고 당시로선 험지 부산에 민주의 깃발을 꽂겠다며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보 노무현’이다. 그의 민주주의 신념과 가치를 향한 깃발과 자신의 위상 탈환을 위한 깃발을 동일선에 두는 것은 좀 오버 아닐까. 조든 한이든 출마는 자유이다. 그럼에도 아쉽다. 그들의 깃발에 선연함이 묻어나지 않는 거다.

흘러간 영화의 속편이랄까. ‘복수무정2’와 ‘첩혈검찰2’를 대하는 느낌이다. 공통점은 ‘윤 어게인’이 아니라 ‘어게인스트 윤’이다. 조에게 윤석열과 한동훈은 한 쌍일 것이다. “윤의 3년은 길다”며 지난 총선을 흔들었던 그이다.

지금은 검찰권력의 완전한 종식을 부르짖는다. 한은 의리와 배신과 비극이 섞인 ‘첩혈검찰’의 속편에서 윤과 절연을 최대의 흥행 포인트로 활용한다. 별로 감동적이지도 않은 깃발이다. 그나마도 사적 욕망이 묻어난다. 조의 깃발에 검찰권력을 향한 불타는 복수심이 엿보인다.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는 본디 그의 깃발이다. 여기에 자신을 표적삼아 가족을 도륙한 검찰에 대한 증오가 섞여 있지 않을까. 경계는 분명할까. 어디까지 공적 가치 구현이고 어디부터 사적 앙갚음인지 모호해 보인다.

한의 ‘보수 재건’도 그렇다. 당선만 강조할 뿐 “왜, 어떻게”는 없다. 그저 당금 세계사의 흐름이 보수화라는 거다. “미국의 트럼프도, 일본의 아베도 그랬다. 대중은 이들이 뭔가 해 줄 것 같아 기대를 걸었다. 다카이치도 그랬다. 나도 깃발을 들고 부산에 자리하면 사람들이 몰려들 거다.”

뚜렷한 지향이나 가치보다 우파적 포퓰리즘의 승리에 주목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단지 권력의 정상, 차기 대통령만 탐하는 것으로 말이다. 울트라 갑으로 살아온 자부심을 위해. 혹은 한덕수가 그랬듯 권력과 정치적 방탄을 노리며.

이 대목에서 청마 유치환의 ‘깃발’을 비틀어본다. “이것은 소리 없는 노이즈. 저 컴컴한 욕망을 향해 흔드는 찰나의 감성 팔이 천 조각. 탐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낀다. 더럽고 꼬부라진 이익의 막대 끝에 흑심은 까마귀처럼 날개를 편다. 누구인가. 이렇게 모질고도 어리석은 마음을 아직도 공중에 달고 있는 그는.” 속편 영화는 대체로 전편만 못하다. 제임스 캐머런의 영화 ‘터미네이터2’ 말고 속편이 성공한 예는 드물다. 물론 007시리즈는 주인공과 본드걸만 바꾸며 롱런하지만. 여하튼 이들의 속편이 대박을 칠지 쪽박이 될지, 제작비 건지는 수준에 머무를지 곧 판가름날 것이다.

왜 당신을 뽑아야 하는지 이유를

다만 그들에게 궁금하다. 왜 당신인가. 당신이 아니면 안 될 이유를 하나만 말해달라. 문정권의 귀환이나 검찰정권 시즌2라는 평가는 억울한가. 서울법대 출신 교수나 검사 경력 말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경륜과 비전을 보여달라. 깃발이 흔들린다.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중국 선종의 육조 혜능이 일갈했다.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거다.” 그 마음은 과연 섬김과 군림 사이 어디쯤일까.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