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경험의 역설, AI가 지우는 전문가의 ‘숙련’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은 수십 년간 기술 발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AI 시대의 진보는 이 법칙조차 유물로 만들고 있다.
이제 기술은 선형적 성장을 넘어 수직적 폭발을 목전에 두고 있다. 레이 커즈와일이 예견한 ‘특이점(Singularity)-AI 지능의 총합이 인류 지능의 총합을 넘어서는 시점-’이 당장 내일이라도 닥칠 것 같은 속도다.
필자는 최근 이 속도를 몸소 체험했다. 2027년 도입될 IFRS 1118(재무제표 표시와 공시)호 컨설팅용 앱을 단 수 일만에 직접 개발해낸 것이다. 과거라면 숙련된 회계사 수 명과 전문 개발자가 팀(TFT)을 꾸려 몇 달간 매달려야 했을 일이다.
도메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AI라는 지렛대를 가졌을 때, 수십 배의 생산성 레버리지를 일으키며 즉시 활용 가능한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음을 증명한 실례다.
19세기 초 ‘러다이트 운동’은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역사는 기술이 문명 깊숙이 자리 잡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과거 산업혁명, 인터넷 혁명, 4차 산업혁명 들은 일부 일자리를 파괴하긴 했지만, 그 간 없었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며 인류 전체의 사회적 후생을 증진해왔다. 인간이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전체적인 복지가 향상되는 선순환이 일어난 것이다.
경험이 사라지는 AI 시대
하지만 AI 혁명은 다를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커즈와일의 이야기처럼 기술 발전이 인류의 대응 속도를 아득히 추월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인류의 후생이 깎여 나가지 않도록 필사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려의 중심에는 지식 노동 시장이 있다. 조문과 판례를 다루는 변호사,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회계사, 개발자, 의사, 약사, 과학자 등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은 AI가 대체하기에 최적화된 직업군이다. 반면, 인간의 감동을 설계해야 하는 예술과 문화, 기획의 영역은 후순위다. 지식 자체가 자산인 시대는 가고, AI의 결과물을 맥락에 맞게 배치하는 ‘판단력’이 자산인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전문직은 직접 실행하는 ‘생산자’에서 AI의 결과물을 검토하는 ‘판단자(Reviewer)’로 전환되고 있다. 마치 오토파일럿 중인 조종사가 계기판을 주시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이 지점에 있다. 계기판의 오류를 잡으려면 비행 원리를 뼛속까지 아는 숙련된 조종사가 필요하듯, AI 시대가 요구하는 진짜 전문가 역시 현장의 시행착오를 거친 숙련된 인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AI가 주니어의 실무(OJT)를 대체하면서 ‘직접 고생하며 배울 기회’는 사라지고 있다. 수백 번의 실수를 통해 체득하던 감각, 선배의 날카로운 피드백을 등에 맞으며 쌓던 내공, 밤을 지새우며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던 그 밀도 높은 시간들이 AI의 즉각적인 답변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노련함이 가장 필요한 시점에 노련해질 과정이 사라지는 ‘경험의 역설’은 우리 청년들이 마주한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더 나아가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10년 후 AI를 제대로 판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차세대 전문가 집단 자체가 공동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다.
기술은 빛의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우리의 제도와 윤리적 담론은 거북이걸음이다. 책임 소재, 자격 검증, 교육 현장의 AI 의존도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할 법률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단순히 기술을 찬양할 때가 아니라, AI의 결과물 속에서 ‘정교한 오류’를 가려낼 인간의 지혜를 어떻게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수할지 ' 지금' 고민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문제 방치해선 안돼
변화의 파도 위에서 전문가의 가치를 지키는 길은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AI를 통제할 지혜를 축적하는 것이다. 전문가 양성 체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하고, AI와의 협업 가이드라인을 견고히 다져야 한다. 청년들의 일할 기회를 빼앗고 행복의 총합이 줄어드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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