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에너지 다원화에서 교훈 찾자

2026-04-17 13:00:03 게재

얼마 전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번 호르무즈 사태가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 오일쇼크,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가스위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중동 리스크를 넘어 세계 에너지 안보 전반을 뒤흔드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과거 두 차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강력한 탈석유 정책과 함께 에너지 다원화를 추진했다. 1978년 원전, 1983년 유연탄 발전이 새로운 발전원으로 등장했고, 1986년에는 국내 최초로 액화천연가스(LNG)가 수입돼 발전과 가정용 연료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80년 대규모 액화석유가스(LPG) 수입이 이뤄졌고, 1987년에는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이 제정돼 태양에너지와 풍력 등 대체에너지 개발·보급의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다. 이 시기에 형성된 에너지 다원화의 정책과 제도는 지금도 우리 에너지정책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재생에너지 공급망에도 새로운 병목 ‘또 다른 호르무즈’가 있다 ]

호르무즈 사태 이후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전환 대책을 내놓았다.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호르무즈 사태의 핵심은 특정 에너지원과 특정 경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얼마나 큰 위험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이 교훈을 곧바로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려면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된다”는 단선적 결론으로 연결하면, 같은 문제가 다른 형태로 반복될 수 있다. 화석연료 수입의 병목은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장비·핵심광물·제조 공급망의 병목이 새롭게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재생에너지는 지정학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태양광 제조 전 단계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태양광과 배터리 공급망에서도 세계 생산능력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 집중돼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가 또 다른 공급망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 세계는 오일쇼크 이후와도 다르다. 그때는 협력과 세계화가 주요 해법이었다면, 지금은 지정학적 분절과 블록화가 더 강한 흐름이 되고 있다. 앞으로의 에너지전환이 에너지·기후정책이 아니라 안보정책의 성격까지 함께 띨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미래의 에너지 안보 위협은 호르무즈 같은 해협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특정 국가에 집중된 재생에너지 공급망 역시 새로운 병목, 곧 ‘또 다른 호르무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더 중요해지는 것이 에너지 다원화다. 이는 재생에너지, 원전, 가스 등 다양한 에너지원이 서로를 보완하는 에너지 믹스를 갖추는 동시에, 재생에너지를 떠받치는 핵심광물·부품·장비·기술의 공급망까지 함께 다원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LPG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는 모습은 다원화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특정 에너지원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을 때 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가 생기고, 특정 국가의 공급망에 과도하게 기대지 않을 때 새로운 병목도 피할 수 있다. 에너지 안보의 본질은 특정 에너지원의 비중을 높이거나 낮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축이 흔들려도 전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도 에너지 다원화 속에서 이뤄져야

호르무즈 사태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의존을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나라일수록 더욱 그렇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해법이 되려면 에너지 다원화와 결합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호르무즈를 지나, 또 다른 호르무즈 앞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김용래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전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