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비용붕괴 시대를 감당하려면
최근 유가급등과 고환율이 맞물리며 경제 전반에 비용 압박이 확산되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환율상승은 즉각적인 전기·가스 요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지고, 이는 물류비와 원재료비 상승을 유발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손익 구조를 흔든다.
억제된 공공요금 현실화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서비스 비용까지 더해지며 고정비 상승이 일상화됐다. 퇴근길 식당 사장님의 한숨 속에는 “열심히 일해도 남는 게 없다”는 절망이 배어 있다. 과거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성공 방정식이 작동을 멈춘 것이다.
경제주체들의 ‘감당가능함’ 붕괴가 의미하는 것
이 현상의 본질은 ‘감당가능함(Affordability)’의 붕괴에 있다. 감당가능함이란 소득 대비 필수지출을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인건비 임대료 같은 전통적 고정비에 플랫폼 수수료, 구독형 디지털 서비스 비용, 탄소중립 전환 과정의 그린플레이션까지 경제주체들의 부담은 임계점을 넘어섰다.
문제는 이러한 비용 상승이 단순한 경기변동이 아닌 구조적 변화라는 점이다. AI가 주도하는 디지털 경제와 탄소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비용은 더 이상 개별 주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 그럼에도 현재의 정책 대응은 여전히 사후적 보조금이나 과거 통계에 의존한 후행적 처방에 머물러 있다. 금융정책 역시 단기 유동성 공급이나 금리 처방에 치중하며, 비용 구조 자체를 혁신하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국가는 단순한 지원자를 넘어 비용구조 자체를 기획하는 비용 설계자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가격을 강제로 통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비용이 형성되는 경로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에너지 임대료 플랫폼수수료 등 핵심 비용 요소에 대해 정책과 시장, 제도를 연동한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금융 또한 단순 자금 공급을 넘어 비용 완충장치로 기능해야 한다. 예컨대 에너지 비용이 일정 수준 이상 급등할 경우 전기요금 상승분을 반영해 소상공인에게 운전자금이 자동 공급되는 구조를 고려할 수 있다. 플랫폼 수수료 부담이 높은 업종에는 실제 수수료 비중을 반영한 맞춤형 금융과 세제 지원이 연계되어야 한다. 즉, 비용이 발생하는 지점과 금융 지원이 작동하는 지점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의 정책 설계는 핵심 도구가 된다. 소상공인의 실시간 매출과 비용 데이터를 연계해 부담이 임계치를 넘는 지점을 사전에 감지하고 요금·금융·세제 정책을 유기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 금융기관 역시 단순 심사를 넘어 데이터 기반으로 기업의 비용 구조를 진단하고, 업종과 성장 단계별로 차별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지능형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전문가의 직관이 아닌 현장의 흐름을 반영한 선제적 개입이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작은 것이 먼저(Think Small First)’라는 원칙 아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비용 구조를 정책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대기업은 규모의 경제로 비용 상승을 흡수하거나 가격에 전가할 여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의 비용구조를 기준으로 설계된 정책만이 경제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시혜적 보호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기준으로 삼는 전략적 설계다.
국가의 역할, 지원자에서 비용 설계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보완하는 미봉책이 아니라, 미래를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의 재설계다.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라는 낡은 질문 대신 ‘비용이 어떻게 형성되고 누가 감당하는가’를 묻는 근본적 전환이 요구된다. 감당 가능함이 무너진 경제에서는 성장도 지속될 수 없다. 이제 국가는 관찰자나 사후 대응자가 아닌, 비용 구조를 설계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