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대통령이 던진 화두 ‘제주 탄소제로섬’
지난 3월 30일 제주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미팅’은 지역의 미래와 직결된 중대한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은 에너지 안보와 기후 위기 대응의 최적지로 제주를 지목하며, 재생에너지 전환과 전기차 보급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이는 2013년 제주가 야심차게 선포했던 ‘탄소제로섬 2030’(Carbon-Free-Island2030)의 비전을 국가적 어젠다로 다시금 소환한 것이다.
당시 제주도는 2030년까지 도내 전력 수요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운행 차량 37만대 전체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계획의 국제적 위상은 대단했다. 특히 2015년 프랑스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당시, 우리 정부는 파리협정의 주요 모델로 제주의 탄소제로섬 비전을 전세계에 직접 소개하며 큰 주목을 끌었다. 대한민국이 기후위기 대응의 선도국임을 증명하는 핵심 브랜드가 바로 제주였던 셈이다.
이러한 열기는 민간으로도 불붙었다. 2014년 시작된 ‘국제 e-모빌리티 엑스포’가 대표적이다. 초창기만 해도 미국의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기술과 자본, 그리고 프랑스 일본 중국 등 세계 최고의 자동차 전문가들이 모여 미래 자동차 시장의 패권을 논하던 열띤 토론의 장이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 그 뜨거웠던 열기는 눈에 띄게 식었다. 제주의 에너지 전환이 세계를 선도하지 못하고 정체되자 글로벌 메이커와 전문가들의 관심 또한 멀어진 탓이다.
멈춰 선 탄소제로섬, 청와대가 챙겨야
현재 제주의 전기차 보급률은 약 10.9%에 불과하다. 전국 평균에 비하면 높은 수치이지만 2030년이 코앞인 시점에서 초라한 성적표다. 이러한 정체는 정부 부처와 유관 기관들의 엇박자에서 기인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통상부 한국전력은 각자의 논리에 갇혀 있었다. 전력망 확충이 필수적임에도 한전은 소극적이었고, 산자부는 중앙집중형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이 제각각 따로 놀면서 제주는 전기를 생산하고도 버려야 하는 ‘출력 제한’의 늪에 빠졌다.
이같은 중구난방의 문제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실 직속의 ‘제주 에너지 혁신 테스크포스(TF)’가 답이다. 산자부 기후부 한전 그리고 기타 관련부처의 전문 공직자와 엔지니어들이 참여해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황우현 전 제주에너지공사 사장(서울과기대 특임교수)은 “제주에는 이미 2009년에 설치된 지능형 스마트그리드 시범단지를 통해 V2G(Vehicle to Grid) 등의 기술적 검증은 끝났으며,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책 실현 의지”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V2G는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을 전력망으로 다시 보내는 ‘양방향 충전’ 기술을 뜻한다. 즉, 전기차를 움직이는 에너지 저장장치(ESS)로 활용해 전력 수급의 불균형을 해결하는 핵심 열쇠다.
이제는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서 V2G와 스마트그리드 구축에 예산을 효율적으로 투입하고 현장의 엔지니어링 리더십을 회복하게 해줘야 한다. 정부와 제주도정 관계자들이 15년 전의 가파도 모델에만 머물러 있으면 결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제주도정 역시 수동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 단순히 전기차 보급대수와 재생에너지 생산량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에너지 전환이 도민 개개인의 실생활에 닿도록 해야 한다.
황우현 교수가 제안한 ‘에너지 자립형 마을’을 도 전역에 순차적으로 실행한다면 도민들은 스마트그리드를 통해 전기를 생산·소비하며 실질적인 혜택을 체감할 수 있다. 전기가 남는 시간에 저렴하게 충전하고 수요가 높을 때 되파는 수익모델이 정착된다면 보급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질 것이며, 청년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고, 식어버린 엑스포의 열기 또한 되살아날 것이다.
테스트베드 제주, 국가 경쟁력의 열쇠
최근 글로벌 정세의 변화로 탄소중립 흐름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지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생존 과제다. 이러한 복잡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주의 ‘탄소제로섬 2030’은 더욱 귀한 가치를 지닌다. 제주는 단순히 국내의 가장 큰 섬이 아니라 미래 도시시스템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완성해 보일 수 있는 ‘글로벌 테스트베드’다.
제주가 이 모델을 성공시킨다면 대한민국이 세계 에너지 전환 시장을 선도하는 강력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탄소제로섬2030’프로그램은 탄소중립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촉매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던진 화두를 제주의 미래를 밝히는 불꽃으로 피워내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탄소제로섬은 식상한 구호가 되어서는 안된다. 세계가 주목하는 가장 혁신적인 실천모델이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기다려주지 않으며 세계적 테스트베드로서 제주의 시간은 지금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
전 한국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