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공리주의, 투명성, 그리고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이행
위 그림은 남극 상공의 오존 농도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통해 과학적 경고가 오존 파괴 물질 사용의 단계적 퇴출이라는 국제적 행동으로 이어진 보기 드문 사례를 만들었다. 또한 오존층 파괴의 실존적 위험을 대중에게 알려 인류 공동체 의식을 발현시키고, 오존층의 점진적 회복이라는 국제사회 합의를 이끌어낸 상징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2024년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우리 사회는 개정을 둘러싼 논의를 이어왔고 최근 정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제도의 구체적 설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논점의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는 단순히 과학 부정론 때문은 아니다. 탄소중립은 사회 전체의 전환을 요구해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해야하는 고난도 과제다. 더구나 감축의 총량적 효율만이 아니라 비용 부담의 분배 윤리까지 함께 다루어야 한다.
환경정책의 성공모델인 몬트리올 의정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성공은 과학적 증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련 기업이 대체물질과 대체기술을 개발하면서 경제적 수용 가능성이 높아졌고, 피해가 예상되는 개발도상국을 위한 유연한 이행 일정과 재정 지원이 마련되었으며, 무역제재라는 실질적 이행수단이 설계되었기에 국제적 합의가 가능했던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이 교훈은 유효하다. 다만 탄소중립은 오존문제보다 훨씬 복잡한 전환이며, 과학적 합의뿐만 아니라 가치를 단일하게 정량화할 수 없는 윤리 문제로 정책 설계 또한 훨씬 정교해야 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안된다. 하지만 현세대의 고통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단기적 비용상승은 빈곤층에 부담을 주고, 탄소집약산업 지역은 일자리와 지역 경제 기반을 잃을 위험에 직면한다. 농어촌 지역은 재생에너지 입지를 둘러싼 갈등의 최전선에 서 있다. “100명의 목숨을 위해 1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공리주의는 정당한가”라는 센델 교수의 질문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불확실성 인정해야 정밀한 정책설계 가능
탄소중립 논의에서 과학적 불확실성을 언급하면 종종 기후변화 회의론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더 정밀한 정책 설계를 위한 과학적 태도이지, 행동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후위기의 원인임을 높은 신뢰도로 말하고 있고, 이 과학적 합의의 핵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감축경로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부문별 감축 수단의 효과, 기술 전환의 속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 불확실한 가정들이 공개되지 않은 채 결론만 제시될 때 발생한다. 어떤 가정을 전제로 어떤 감축 수단을 선택했는지, 그 사회적 비용이 어떻게 산정되었는지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비교할 수 있고, 정책의 신뢰도도 높아진다.
불확실성과 근거가 공개되지 않은 채 우리나라의 즉각적인 탄소중립이 현세대의 피해 없이 기후재난을 해결한다거나, 반대로 탄소중립이 큰 피해를 준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 주장이라기 어렵다. 과학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타인이 검증 가능하고, 반론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절차에서 불확실성 언급은 필수적이다.
무조건적으로 과학적으로 100% 확실하다는 주장은 교조적 극단주의에 빠질 위험이 크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 설명하는 것과 맞물리면 오해와 불신으로 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양극화된 의견이 빠르게 퍼지는 현재는 더욱 그렇다.
자연 발생하는 폭염과 이미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재난이 뒤섞여 고통 분담의 동기를 잃으면 정책은 사회적 지지를 상실한다. 그래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이에 기반한 이행 점검은 사회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필요한 탄소중립에서 국제적 신뢰의 기본이다.
기후위기 탈출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오존층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1980년 수준으로의 회복은 2040년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다. 탄소중립은 그보다 더 길고 어려운 전환 과정이다.
기후위기 탈출은 2050년에 끝나지 않는 마라톤이다. 투명성과 이에 기반한 재정적 지원과 보조금 설계는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동력 발견과 균형잡힌 사회전환을 통한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이행의 핵심 조건이다. 그리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맞추어 탄소중립 이행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방향타 기능을 마련해줄 것이다. 헌재 결정이 요구하는 정밀한 감축경로, 투명한 공개, 공정한 보완장치에 부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