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자학적 종미나 자해적 혐중, 우리 갈 길 아니다

2026-04-23 13:00:01 게재

미국과 이란의 종전협상 재개가 난항을 겪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전쟁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질 개연성이 높다. 벌써부터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미국 패권이 급격히 저물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완벽한 승리의 서사를 만들지 못하고 있고, 세계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있는 수습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실망 탓이 클 것이다.

트럼프행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의문도 크다. 미국 경제가 고유가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부 투자자들이 전쟁 정보를 이용하여 한몫을 잡고 있다는 뉴스가 그치지 않고 있을 정도이다. 트럼프의 거친 관세정책, 베네주엘라 침공과 그린란드 등에 대한 과도한 요구에 부담을 느끼던 주요 국가들도 미국과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태세다.

모호한 전쟁 명분, 민간인 폭격으로 트럼프 지지율이 바닥인데다 마가세력의 동요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가 미국의 가치기반을 파괴하는 ‘고상한 거짓말(noble lie)’로 드러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모양새다. 미국의 리더십이 날개없이 추락하는 반대 편에서 중국은 글로벌 리더로서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영국 등 미국의 핵심 우방 정상이 중국을 잇따라 방문하고, 국제사회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의 과도한 자기 확신, 일관성 없는 정책이 중국의 공간을 넓히는 역효과를 낸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곧 권위주의 국가 중국이 미국의 대안이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가 이번 전쟁을 통해서 미국의 국력과 신뢰 자본의 한계를 보았지만, 중국이 미국의 우위에 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단기적으로 미중 경쟁이 더욱 가열될 것이나 장기적으로 세계가 다극 혹은 무극의 질서로 이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배경이다.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새로운 현실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우리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질서전환기, 반지성적 이분법 경계해야

질서전환기, 특히 패권 교체기에는 패권을 다투는 세력의 중간지대에서 대리전이 빈발했던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6.25전쟁, 베트남전쟁이 그렇고 198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그렇다.

그만큼 전환기는 불확실하고 위험하다. 그리하여 이같은 상황의 국가들이 관철할 전략적 준칙은 강대국의 논리를 국내정치에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다. 강자의 생각을 지레 짐작해 최대 유연성을 포기하는 행태도 금기다. ‘사나운 코끼리’를 방안으로 끌어들일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우리 사회 일각의 반지성주의적 감정적 이분법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반공이란 철지난 개념을 들고 나와 선악의 극렬한 대치를 선동하며 건강한 공론장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 극단이 미국 편에 서야만 한다는 ‘종미론(從美論)’이다. 한미동맹 지상론자들이 보여온 태도다.

보수정부, 특히 지난 정권이래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는 극우의 미국 끌어들이기는 더욱 맹목적이다. 12.3 내란세력이 트럼프에게 기독교정신에 입각해 정치를 하겠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더니 이번에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한미, 한중동맹이란 틀을 들고 나와 현 정부 정책을 ‘친북 한중동맹’으로 규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학적 종미론 못지 않게 경계할 것이 소위 부정선거론을 매개로 한 근거없는 ‘혐중론(嫌中論)’이다. 중국이나 한중관계에 대한 냉전적 선입견을 버리고, 누군가의 속삭임이 아닌 우리 자신의 눈으로 중국을 보고 판단하면 될 일이다. 감정적 극단과 ‘상상된 지식’은 정책을 오도한다.

우리를 미중 사이를 오가는 존재로 고정시키는 자주냐 동맹이냐라는 식의 조악한 이분법은 실사구시적 정책을 방해하고 불필요한 적을 만드는 위험한 자충수가 될 뿐이다.

1796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고별연설에서 “외세의 책략에 방심하지 말라. 근거없는 질시와 오경보로 갈등에 불을 지르는 당파심의 폐해를 잊지말라”는 호소를 남겼다. 외국에 헌신해 미국의 이익을 배신하거나 희생시키는 시민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교활하고 야심차며 파렴치한 인물의 출현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늘날 미국의 좌절을 초래한 미국 민주주의의 실패를 예견한 말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극우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파당적 이익 아닌 미래 역사를 고민하라

사대자소(事大字小)를 금과옥조로 받들며 망해가는 명(明)에 머리를 조아리고, 떠오르는 청(淸)과의 전쟁을 불사했던 조선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던가? 미국이 옳다, 중국이 옳다가 아닌 우리의 실존적 이익이 무엇이냐가 생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시각에서 우리의 실존을 고민하는 철학이 세워지지 않으면 언제라도 강대국 권력정치의 한복판으로 내몰릴 수 있다. 한미 극우 연대에 공동체의 미래가 달린 것처럼 수선을 피우는 ‘철없는’ 인사들이 명심할 일이다. 지금은 그런 한가한 역사의 시간이 아니다.

홍면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