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전쟁의 두 얼굴

2026-04-28 13:00:01 게재

지난 30년은 ‘세계화’의 시대였다. 국경은 낮아졌고, 생산과 물류는 효율성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앞세워 국경을 열고 달려온 글로벌 시장경제 체제 시대였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전쟁을 억제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2020년대에 접어들며 이 가정은 흔들리고 있다. 전쟁은 더이상 특정 지역의 군사적 충돌에 그치지 않는다. 식량가격 에너지비용, 금융시장까지 일상의 모든 영역을 흔드는 ‘경제 시스템의 충격’으로 확장되고 있다. 평화시대는 저물고 있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그 양상이 바뀌었다. 현대전은 화면 속 지정학적 공간, 전선(Frontline)에서 승부가 나지 않는다. 새로운 네트워크 전선이 승부처다. 러시아의 유전과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 호르무즈와 홍해의 물길이 그것이다.

경제의 숨통을 조일 목적으로 국가의 자금과 물자의 이동을 차단한다. 글로벌 공급망의 무기화다. 그 결과, 전쟁은 당사국의 피해를 넘어 세계인의 지갑까지 공격하는 양상이다. 글로벌 시스템을 차단해 생명줄을 조이는 ‘시스템 파괴전’이다.

공격 대상도 민간과 군을 가리지 않는다. 전쟁의 도구라면 밀과 쌀, 에너지, 민간시설까지 동원하고 파괴하는 데 망설임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때 세계 밀 수출의 약 25~30%를 차지했다.

실제로 이 전쟁으로 식량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사회 불안과 폭동, 정권의 불안정으로 연결된 사례가 적지 않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면서 독일 등 유럽은 산업을 넘어 가정 난방까지 직격탄을 맞았다. 자원이 핵 무력에 버금가는 전략적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공급망이 무기화되는 전쟁의 새 전선

전쟁 피해와 후유증은 당사국을 넘어 세계 각국에 미친다. 그 결과, 전쟁이 또 다른 분쟁을 불러오는 거대한 위기의 사슬이 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를 ‘초거대 위협(Megathreats)’이라고 규정한다. “부채위기와 지정학적 갈등, 기후 변화가 결합된 지금의 상황은 1930년대 대공황 직전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경제적 충격이 전쟁을 부르고 전쟁이 다시 경제를 파괴하는 악순환 구조를 분석한 것이다.

현재 중동전쟁도 마찬가지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응해 미국은 호르무즈를 나오는 이란 선박을 나포하고 있다. 모두 국제해양법에 보장된 ‘항행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전세계 해상 석유 수송량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이곳이 봉쇄되면서 글로벌 경제는 심각한 충격에 직면했다. 특히 이란이 원유를 수입하는 고객 국가의 선박을 인질로 삼는 것은 도의적으로도 있을 수 없다.

만약 피해 당사국이 경제적 피해를 막기 위한 자구적 조치로 군사대응에 나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제 해상 교역로의 자유로운 통행과 안전은 국제 경제의 생명선이다. 지정학의 세계적 석학 로버트 D. 카플란은 저서 ‘지정학의 역습’에서 “기술이 발전해도 지리적 요충지의 가치는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좁은 통로를 차지하려는 욕망이 전쟁의 불씨가 된다”고 지적했다. 국제 정치학자들은 이제 이란의 ‘전략적 봉쇄’를 물리적 타격과 동일한 수준의 침략행위로 간주해야 한다고 논의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경제학이다. 호르무즈 봉쇄로 인해 세계경제가 파국으로 간다면 피해국들의 군사개입은 ‘정당방위’로 용인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진행 중인 전쟁들이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법이라는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차원의 ‘생존’을 위한 명분이 전쟁의 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 잘못된 정치와 종교적 리더십이 민족주의와 종교적 증오를 결합해 전쟁을 일으킨 결과다. 그 고통의 대가를 세계인이 감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계는 더 위험해진다. 세계를 지탱해 온 경제시스템이 붕괴되고 있어서다. 글로벌 공급망은 단순한 효율의 도구가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는 장치다. 서로 얽혀 있기에 쉽게 충돌하지 못했다. 이 연결이 끊어지면 각자도생의 구조로 바뀐다. 이때는 협력보다 충돌이, 교역보다 봉쇄가 더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을 막기 위한 군사적 억지력만이 아니다. 경제적 상호의존을 어떻게 복원하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다.

경제안보 재설계를 위한 전략적 고민을

전쟁의 두 얼굴, 세계는 지금 경제와 안보가 결합된 시대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눈앞에 포연과 총성이 없다고 평화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급망이 끊기고 교역로가 막히는 순간, 전쟁이 일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의 중심을 명확히 잡아야 한다.

모호한 균형은 위기상황에서 보호막이 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국익은 선언으로 지킬 수 없다. 구조로 지켜진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변화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칼럼니스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