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바꾼 중동질서…미국·이스라엘 고립

2026-04-30 13:00:00 게재

오랜 동맹 유럽은 거리두기 UAE의 반란으로 걸프 분열

29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초정통파(하레디) 유대인 남성들이 군 징집에 반대하며 도심 주요 진입로를 봉쇄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장에는 “우리는 파라오도 이겨냈다, 군 경찰도 이겨낼 것” “징병법 전쟁 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등장했다. EPA=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한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정치 지형이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워싱턴과 텔아비브는 군사력을 앞세워 이란을 압박하고 역내 질서를 재편하려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타나는 현실은 정반대다.

유럽 동맹국들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고, 걸프 국가들은 분열하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UAE)는 사우디아라비아 중심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란을 고립시키려던 전쟁이 오히려 미국과 이스라엘의 외교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먼저 균열이 드러난 곳은 유럽이다. 2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공개한 녹취록에서 크리스천 터너 주미 영국대사는 미국의 유일한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 상대는 영국이 아니라 “아마도 이스라엘”이라고 말했다.

영미 동맹을 상징해 온 외교 용어가 이제는 사실상 이스라엘만을 의미하게 됐다는 취지다. 미국 외교가 전통적 동맹보다 이스라엘 안보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기울어졌다는 유럽 내부의 불만이 노출된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터너 대사는 영국과 유럽이 미국의 안보 우산에 기대는 기존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전후 대서양 동맹 체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이 이스라엘과의 결속을 강화할수록 전통적 동맹의 결속은 오히려 약화되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독일의 반응은 더욱 직설적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최근 공개 석상에서 미국이 “전략 없이 전쟁에 들어갔다”고 비판하며, 협상에서도 “설득력 있는 전략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국가 전체가 이란 지도부에 의해 굴욕당하고 있다”고 말해 미국이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외교적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행동에서도 유럽은 선을 긋고 있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호르무즈 해협 작전에 끌어들이려 하자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이란 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공개 선언했다. 이런 거리두기는 미국 외교력 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걸프 지역에서도 균열은 선명하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를 전격 선언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중동 질서에 정면 도전했다.

OPEC은 오랫동안 사우디 주도로 국제 유가와 산유국 질서를 조율해왔지만 UAE가 조직 밖에서 독자 증산에 나설 경우 사우디의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 변경이 아니라 걸프 패권 구조를 흔드는 정치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UAE의 선택은 미국과의 직접 연대를 강화하려는 계산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전쟁에서 대규모 미사일·드론 위협을 겪은 UAE는 걸프협력회의(GCC)의 집단안보 체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확인했고 결국 지역 연대보다 미국과의 개별 안보 협력을 택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와르 가르가시 대통령 고문이 “GCC의 입지는 역사상 가장 취약했다”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목은 미국과 이스라엘에겐 또 다른 딜레마다. 표면적으로는 UAE의 친미 노선이 미국 편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주도해 온 ‘단일 동맹 질서’가 아니라 각국이 생존을 위해 미국과 개별 거래하는 파편화된 질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조정자이자 통합자로서 행사해 온 리더십은 줄어들고 거래 중심의 임시 연합만 남게 되는 구조다.

경제적 후폭풍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외교 공간을 좁히고 있다. 독일은 이란 전쟁 여파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긴급 지원책을 마련했다. 유럽 각국은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불안, 재정 압박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이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자 동맹 내부에서는 “왜 우리가 대가를 치러야 하느냐”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중동 민심 역시 두 나라에 우호적이지 않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민간 피해와 해상 물류 차질, 원유 시장 불안이 확대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확전보다 휴전과 협상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외교적 명분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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