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보동맹, 전략적 신뢰·존중이 핵심

2026-05-04 00:00:00 게재

미국 정보공유 제한 조치 … 부처간 기능적 시각차, 동맹의 신뢰위기 수면위로 노출

지난 수십년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탱해 온 핵심축인 한미동맹이 최근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이른바 ‘구성 핵시설’ 발언이 기폭제가 된 기밀누출 논란과 미국의 정보공유 제한 문제는 단순한 해프닝에 그치지 않고,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번 사태는 정치권의 격렬한 여야 공방을 넘어 정부 부처 간의 기능적 시각 차이, 나아가 동맹의 신뢰위기라는 다층적 문제를 수면 위로 노출했다.

특히 북핵 위협의 고도화와 지정학적 파고가 거세지는 엄중한 시기에 발생한 이번 논란은 우리 내부의 전략적 불협화음을 드러낸 동시에 한미 정보공유체계의 취약성을 나타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5년 7월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 협상단과 무역 합의를 타결한 이후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있다. 연합뉴스

정쟁으로 내부 보안과 외부 신뢰 실추

정치권은 안보현안을 놓고 날 선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동영 장관의 발언을 두고 정부와 민주당은 해당 시설이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첩보’ 수준의 데이터이며, 정책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통상적인 언급이라고 옹호한다. 반면 국민의힘 등 보수야당은 국무위원이 공식석상에서 이를 직접 언급함으로써 첩보를 국가 차원의 공식 ‘정보’로 확정해 준 치명적 보안 사고라고 맹비난한다.

이러한 논란은 국가 안보 현안을 정치적 주도권 싸움을 위한 도구로 소모하는 전형적인 행태다. 기밀의 실질적 가치를 냉정하게 따지기보다 정부의 실책을 부각하거나 정책을 방어할 빌미로 삼는 과정에서, 내부 보안 역량과 대외적 신뢰는 심각하게 실추되고 있다.

정치적 선동이 가미된 공방은 국가기밀 보호라는 대원칙을 무력화하며, 정쟁 과정에서 또 다른 보안 취약점을 노출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안보이슈에서 초당파적 협력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열상을 노출하는 것은 동맹국에 존중을 요구할 대외적 명분을 스스로 약화시킨다.

특히 이러한 태도는 한미 정보공유의 신뢰관계에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한다. 정보는 그것을 다루는 주체의 신중함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데 정치권은 이를 당파적 이익을 위한 휘발성 소재로 취급하고 있다.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엄중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동맹국인 미국 역시 한국과의 정보공유를 기피하게 될 것이며, 이는 곧 국가안보의 커다란 공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안보문제를 정쟁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사태는 정부 내부 부처 간의 시각 차이로 번지며 소위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구도로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규정 자체가 우리 안보 메커니즘을 오해한 대단히 부적절한 프레임이다.

통일부와 외교부, 대상과 활동영역 달라

통일부와 외교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입장 차이는 단순히 이념이나 정책 노선이 달라서가 아니라 마주하는 대상과 활동 영역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기능적 차이’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통일부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대북 메시지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이에 비해 외교부는 냉혹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무대에서 국익을 조정해야 하기에 정보 보안과 동맹국과의 조율을 우선시하는 것은 기능적 특성에 충실한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두 부처의 목소리가 다르게 들리는 것을 이념투쟁이나 노선투쟁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국가적 안보 역량을 결집하는 데 장애가 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처 간의 엇박자를 조율하고 단일한 전략 하에 움직이게 하는 국가안보실의 컨트롤타워 역할이다. 국가안보실은 부처 간의 기능적 차이가 시너지로 발휘될 수 있도록 세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대외 메시지의 완결성을 담보해야 한다. 각 부처가 고유의 전문성을 발휘하되 국가적 대전략 속에서 일관된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대외 협상력과 동맹의 신뢰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거래적 동맹관과 안보 자율성의 위기

또 다른 문제는 한미 간에 표출된 신뢰 위기와 그 이면에 숨겨진 전략적 역학관계다. 현재 트럼프행정부가 견지하고 있는 ‘거래적 동맹관’은 정보공유조차 비용과 이익의 잣대로 재단하며, 이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위한 강력한 레버리지로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주독 미군 감축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기조는 동맹국에 대한 실질적인 압박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와 맞물린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한국·일본·필리핀 킬웹(Kill Web)’ 구상은 한국의 독자적 정보자산을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하부요소로 편입시키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브런슨 사령관이 전작권 이양에 소극적인 것 역시 한국의 군사적 자율성 확대를 경계하는 미국의 속내를 드러낸다. 트럼프 행정부는 보안 이슈를 빌미로 정보 공유를 제한함으로써 한국을 자국의 안보 가이드라인 안에 강력하게 묶어두려는 전략적 의도를 보이고 있다.

한미, 전략자산 공유하는 호혜적 관계

오늘날 한국의 정보역량은 이미 미국과 대등한 파트너십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우리 군은 군사정찰위성 5기 발사 성공을 통해 독자적인 감시망을 구축했으며, 금강·백두 정찰기를 상시 운용하며 북한군의 영상정보(IMINT) 및 신호정보(SIGINT)를 정밀 포착하고 있다.

특히 지리적·문화적 특수성을 기반으로 구축된 한국 특유의 휴민트(HUMINT) 역량은 미군조차 대체할 수 없는 한미 연합 정보의 핵심이다.

여기에 한국군 정보 분석관들의 탁월한 판독 능력과 분석력은 연합 정보자산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결정적 요소다. 이는 한미 정보협력이 단순히 일방적 수혜관계가 아니라 전략적 자산을 공유하는 호혜적 파트너십임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보안이슈를 무기로 정보공유를 제한하는 것은 성숙한 동맹의 자세라 보기 어렵다. 트럼프행정부는 비용절감을 강요하면서도 한국의 고도화된 정찰자산과 분석역량을 전작권 이양의 정당한 기반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맹이 일방적 통제 체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우리는 향상된 국방력을 바탕으로 대등한 정보공유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안보주권과 자율성이 위협받는 이 구조적 불균형을 타파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치밀하고도 강력한 대응 논리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한미동맹은 지난 70여 년간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며 다져진 우리 안보의 뿌리다. 이번 논란은 뼈아픈 교훈을 남겼지만, 이를 계기로 동맹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정부 부처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재점검해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외교·안보 진용의 조율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보 관리의 작은 틈이 동맹의 거대한 전략적 자산을 훼손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내부 보안 기강을 새롭게 확립해야 한다.

동시에 트럼프행정부는 정보공유의 제한을 풀고 협력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힘의 논리나 일방적 거래 관점이 아닌, 한국의 향상된 정보역량과 위상을 존중하는 대등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정보 협력을 정상화해야 마땅하다. 미국이 추진하는 다자안보협력이 진정한 효과를 거두려면 동맹국의 안보주권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상호 호혜적인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반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상호존중을 통한 성숙한 동맹으로

국익 앞에는 여야가 없으며 동맹의 신뢰 앞에는 일방적 조치나 감정적 대응이 앞서서는 안된다. 상호존중과 전략적 소통을 통해 흔들리는 신뢰의 축을 견고하게 바로 세우는 것이 현 정부와 미국 트럼프행정부에 주어진 엄중한 과제다.

동맹의 가치를 기술적 보안이슈나 비용논리에 가두지 않고 ‘상호존중’으로 승화시킬 때 한미 정보동맹은 비로소 완전한 완성체가 될 것이다.

조성렬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전 오사카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