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엘니뇨, 기후체제 기준선 변화 가능성

2026-05-18 13:00:01 게재

탄소 감축해도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어 … 기후위기정책 등 연쇄 파급 효과, 재점검 필요

때이른 초여름 날씨가 찾아오면서 올여름은 얼마나 더울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여기에 이른바 ‘슈퍼 엘니뇨’ 발생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이상기상 현상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근 엘니뇨로 인한 영향을 단순히 덥다 춥다 식의 기온에 국한해 볼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기후 발생과 같은 일회성 사건이 아닌 기후 기준선 자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종전과 다른 관점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구를 새로운 상태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이른바 ‘레짐 시프트(체제 전환)’에 대비해 기후적응정책 등 관련해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다.

14일 예상욱 이화여자대학교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강한 엘니뇨가 발생하면 그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지는 세상이 된다”며 “만약 1997/98년 수준의 강한 엘니뇨가 발생한다면 2026년을 경계로 또 다른 기후 시스템의 변이(레짐 시프트)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10~20년 더 살펴봐야 실제 변이인지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14일 국종성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엘니뇨는 대기 순환을 전면적으로 바꾸기 때문에 전지구적으로 이상기후를 발생시킬 수 있다”며 “일반적인 엘니뇨가 오면 기온이 오르고 라니냐가 오면 내리기를 반복하지만 이른바 ‘슈퍼 엘니뇨’는 다르다”며 “원래 30℃였던 기준이 35℃로 확 바뀌고, 엘니뇨가 끝나고 라니냐가 와도 28℃로 돌아가야 할 기온이 33~35℃ 근처에서 유지되는 식으로 레짐 시프트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조한 지역에 슈퍼 엘니뇨가 대가뭄을 일으키면 그 이후 다시 비가 오는 상황으로 돌아가기가 힘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올해 강한 엘니뇨 발생 가능성이 있을까. 학계에서는 올해 4월 적도 태평양 수온약층 온도 편차가 6도를 넘은 현상을 주목 중이다. 수온약층은 해수면 아래 수십~수백 미터 사이에 수온이 급격히 낮아지는 경계층이다. 이 층의 온도 변화는 수개월 뒤 해수면 온도로 이어지기 때문에 엘니뇨 발달의 선행 지표 중 하나로 활용될 수 있다.

예 교수는 “4월 수온약층 온도 편차가 6도를 초과한 것은 처음 봤다”며 “5월에도 4월과 비슷한 흑은 다소 작은 규모의 대기 신호(돌발 서풍)가 이어진다면 강한 엘니뇨로 발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 교수도 “보통 엘니뇨 때 수온약층 온도 편차는 3~4도 수준인데 6도가 나왔다는 건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현 추세대로라면 강한 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단 봄철 엘니뇨 예측 불확실성은 높은 편이다. 예 교수는 “봄철에는 대기 내부의 불규칙한 변동(노이즈)이 커서 기존 기후 예측 모델만으로는 신뢰도가 낮아지는 ‘스프링 배리어(봄철 예측 장벽)’ 문제가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벌써 여름같은 해운대 전국적으로 낮 기온이 크게 오르며 무더운 날씨를 보인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기후체제 전환 가능성 무시 못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의 논문 ‘슈퍼 엘니뇨 사건이 지구온난화 하에서 기후 레짐 시프트를 촉발하고 위험을 증폭시킨다’에 따르면, 슈퍼 엘니뇨가 발생한 해에는 △해수면온도 △지표기온 △토양수분 등에서 기후 레짐 시프트 발생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이 논문에서는 슈퍼 엘니뇨를 엘니뇨가 절정에 달하는 겨울철(12~2월) 열대 태평양 적도 지역(Nino 3 구역) 해수면온도 편차가 정상 수준보다 2 표준편차를 초과하는 사건으로 정의했다. 기상 관측 사상 이에 해당하는 사례는 △1982/83년 △1997/98년 △2015/16년 단 3차례뿐이다.

연구팀은 △7종의 해수면온도 △6종의 지표기온 △10종의 토양수분 재분석 자료를 교차 검증했다. 기후 레짐 시프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STARS(순차 t-검정 레짐 시프트 분석)’ 기법을 사용했다. 또한 엘니뇨의 단기 변동(통상 1~2년)을 레짐 시프트와 구분하기 위해 10년 미만의 변화는 분석에서 제외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 엘니뇨·라니냐는 기후 레짐 시프트 확률을 기후 평균 대비 소폭 혹은 국지적으로만 높였다. 반면 슈퍼 엘니뇨는 △해수면온도 △지표기온 △토양수분 등 세 변수 모두에서 광역적이고 일관된 확률 상승을 보였다.

해수면온도의 경우 △중·서북태평양 △인도양 남동부 △멕시코만 등지에서 레짐 시프트 확률이 높아졌다. 지표기온은 △동아프리카 △남아메리카 △해양대륙(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일대)에서, 토양수분은 △중앙아시아 △중부 호주 △아마존에서 변화가 확인됐다.

연구팀은 CESM2-LE(100개 앙상블 멤버)와 CMIP6(48개 모델) 기후 모델을 활용해 미래 전망 등도 분석했다. 미래 고배출 시나리오(SSP3-7.0)에서 슈퍼 엘니뇨의 레짐 시프트 촉발 효과가 넓은 범위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특히 지표기온과 해수면온도에서 증폭이 두드러졌다. 온난화가 충분히 진행되면 슈퍼 엘니뇨 없이도 일반적인 해에 토양수분 레짐 시프트 확률이 슈퍼 엘니뇨 수준에 근접한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는 육상 기후 체제 자체가 더 불안정해진다는 의미다.

물론 이 연구의 한계는 있다. 관측 기록상 슈퍼 엘니뇨가 단 3차례뿐이어서 통계적 신뢰도 확보를 위해 모델 시뮬레이션 의존도가 높다. 또 탐지된 레짐 시프트가 영구적인 급변점인지, 수십년 뒤에는 회복 가능한 장기 이탈인지는 이번 연구로는 판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의 의미는 슈퍼 엘니뇨가 단순한 이상기후 사건이 아니라 기후 기준선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에 있다. 더욱이 온난화가 심화될수록 이 위험이 비선형적으로 커지기 때문에 종전과 다른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후 체제 기준선 자체가 이동하면 수십년에 걸쳐 그 기준에 맞춰온 농업·수자원·생태계 관리 체계 전반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 기후 ‘비가역성’ 둘러싼 고민 커져

예 교수는 “학계에서는 이산화탄소(CO₂) 농도를 현 수준보다 2~4배 높였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이제 복귀 시켰을 때 달라지는 ‘엔소(ENSO·엘니뇨-남방진동)’ 특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며 “2050년 넷제로를 한다고 했을 때 관측 측면에서 엔소의 비가역성을 확인하려면 2040~2050년 탄소중립이 이뤄지고 난 다음에야 가능하지만 학계에서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비가역성은 한번 변한 상태가 원인이 사라져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성질이다. 한 예로 구겨진 종이를 다시 펴도 구김이 남듯 현상을 들 수 있다. 지구 기후 체제도 온실가스를 줄인다고 해서 예전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면 기후가 자동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한번 바뀐 기후 기준선은 그 상태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판도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

국 교수는 “비가역성은 이분법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해수면 상승처럼 극히 비가역적인 현상이 있는 반면, 어느 정도 돌아오는 현상도 있어 어떤 변수를 보느냐에 따라 가역과 비가역의 정도가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네이처 자매지인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어스 앤드 인바이런먼트’에 게재된 논문 ‘열대 대류에 대한 CO₂ 강제력에 의한 해수면온도 임계값의 비가역적 변화’에 따르면, CO₂ 농도를 현재의 4배까지 높였다가 다시 현재 수준으로 낮추는 실험에서 열대 대류의 핵심 변수인 △해수면온도 대류 임계값 △대류 구역 면적이 비가역적 변화와 이력 현상을 나타냈다.

이력 현상은 어떤 시스템이 외부 조건이 같더라도 그 조건에 어떻게 도달했느냐에 따라 다른 상태를 보이는 현상이다.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경로가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CESM 기후 모델 28개 앙상블 실험을 주축으로, CMIP6에 참여하는 8개 지구시스템모델(ESM)과 교차 검증했다. CO₂ 농도를 연 1%씩 높여 4배(1468ppm) 수준에 도달시킨 뒤(ramp-up·140년), 다시 같은 속도로 현재 수준까지 낮추는(ramp-down·140년) 대칭적 경로 실험을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CO₂를 다시 현재 수준으로 낮춰도 열대 대류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최소 해수면온도(대류 임계 SST)는 원래 값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류 구역 면적은 더욱 뚜렷한 비가역적 확대를 보였다. CO₂ 농도가 같음에도 CO₂가 낮아지는 시기(ramp-down)의 대류 구역은 CO₂ 증가 시기(ramp-up)보다 약 146만㎢, 알래스카주 면적(약 172만3000㎢)에 맞먹는 규모만큼 추가로 넓어졌다.

CO₂가 줄어드는 구간에서 열대 태평양 중·동부의 엘니뇨형 해수면 온난화가 강화돼 워커 순환이 약해진 채 회복되지 않았고 이것이 대류 구역 확대로 이어졌다. 미래 저배출 경로(SSP1-1.9, SSP1-2.6) 분석에서도 21세기 말 CO₂ 감소 구간에서 대류 임계 SST와 대류 구역이 이전 같은 CO₂ 농도 시기보다 높게 유지되는 이력 현상이 재현됐다.

물론 이 연구의 한계는 있다. CESM이 남반구 동태평양의 해수면온도와 강수량을 다소 과대 추정하는 편향이 있어 대류 구역 면적 변화가 실제보다 부풀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탐지된 비가역적 변화가 영구적인 전환점인지, 수백년의 충분한 복원 기간이 주어지면 회복 가능한 장기 이탈인지는 이번 연구만으로는 판별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예 교수는 “자연이 비가역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가 탄소감축 노력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안 된다”며 “이러한 비가역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현 감축 목표보다 훨씬 더 빠르게 탄소 배출을 줄여 엔소 비가역성이 나타나지 않는 수준으로 가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엘니뇨 = 엘니뇨·라니냐 감시구역(열대 태평양 Nino 3.4 지역 : 5°S~5°N, 170°W~120°W)의 3개월 이동평균한 해수면온도 편차가 +0.5℃ 이상(-0.5℃ 이하)으로 5개월 이상 지속될 때 그 첫 달을 엘니뇨(라니냐)의 시작으로 여긴다.

■스프링 배리어 = 엘니뇨는 발달 초기인 봄철에는 예측 정확도가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스프링 배리어(봄철 예측 장벽)’라고 한다. 봄철에는 열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변화가 작고 대기 내부의 불규칙한 변동이 상대적으로 커서 엘니뇨 발달 신호가 이 변동 속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엘니뇨가 강하게 발달할지 약하게 끝날지를 봄에 판단하기가 가장 어렵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수온약층에서 이례적인 신호가 포착되더라도 최종 강도를 단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