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복희 '5.18열매' 대표
꽃다운 18세에 성폭력 피해…46년 만에 증언
도청서 끌려가 성폭행 당해
17일 도청 앞 전야제서 공개
성폭력 피해자에서 증언자로
“정말 꺼내놓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입니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처럼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자식들에게는 숨기고 싶었다. 올해 2월 ‘5.18열매’ 대표를 맡고선 더 이상 두 아들에게 숨길 수는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과거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털어놓았다. 어느덧 장성한 아이들은 되레 엄마를 다독거렸다.
지난 11일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 회의실에서 만난 김복희(64·사진)씨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6년 만에 가슴 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꽃다운 나이인 김씨(당시 18세)는 군대에 간 오빠 일을 이어받아 집에서 자개장 수작업을 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당시 방위병이었던 연인 A씨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1980년 5월 26일 도청에 들어갔다가 5월 27일 새벽 도청 1층 상황실에서 계엄군에게 연행됐다.
“새벽에 투항을 권유하는 계엄군의 확성기 소리에 이어 고막이 터질 듯한 총소리가 들렸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어요. 계엄군이 ‘개 쌍년아’ 하는 욕설과 함께 총으로 내려쳐서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팔이 뒤로 묶어져 있었죠.”
김씨는 상무대로 끌려가 책상이 놓인 좁은 사무실에서 수사관 2명에게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김씨는 “수사관이 다짜고짜 브래지어를 강제로 올리고 바지까지 내려 그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수사관은 김씨를 “폭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며 가혹하게 폭행했다. 김씨는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애원해서 갔던 화장실에서 인솔 병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났구나 하고 체념했죠.” 김씨는 가해 병사를 “키가 컸고, 한 손으로 입을 막을 정도로 손이 큰 병사”라고 기억한다.
그 후 광산경찰서로 연행된 김씨는 15일 동안 영창에 구금됐고, 상무대 강당으로 옮겨져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지 말라”는 정신교육을 받고 풀려났다.
김씨는 그 사건 이후 정신적 후유증을 심하게 앓았다. 집에 돌아온 후 넋이 나간 상태로 죽은 듯 지냈다. 수면제를 모아 자살을 시도했다. 당연히 직장 생활도 할 수 없었다. 한때 기도원에 들어가기도 했다. 어머니가 서둘러 결혼을 시킨 이후에도 잠을 자지 못했다. 어쩌다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렸다.
남편에게 어렵게 성폭행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결국에는 자신의 약점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피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이 간암으로 세상을 등진 뒤에는 장애인인 오빠를 돌보며 생활하면서 생계가 어려워지자 1998년 5.18 보상 신청 때 도청에서 연행됐다가 훈방된 사실로 5.18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도 성폭력 피해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바뀐 것은 2023년 이뤄진 조사위 조사 때다. 성폭력 사실을 눈치챈 조사관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 그녀는 “성폭행 사실을 사돈과. 아이들이 알게 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앞서 증언을 망설였다”며 “다만 나와 같은 피해자가 구제받게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처음 성폭력 피해자 자조 모임 대표를 맡은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해 비교적 자신의 상태가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피해자들은 아직도 그때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건강이 심각한 상태였다. 그녀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이렇게 주저앉아 있어야 되나”라고 자신에게 반문했다.
2026년 발족한 ‘5.18열매’ 대표도 맡았다. 그녀를 비롯한 열매 회원들이 바라는 것은 크지 않다. 회원들이 건강을 되찾고 자신들의 이야기가 기록으로 정리되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 대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이고 있다”며 “보상만 받으면 피해자로 남겠지만, 열매 활동을 통해 과거사 젠더폭력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진정한 치유”라고 말한다.
김 대표는 오는 17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리는 제46주년 광주 민주화운동 전야제에서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자 모임인 ‘열매’의 이야기를 대중 앞에서 처음 공개 증언할 예정이다.
홍범택 기자 durumi@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