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반도체 호황이 곧 불황의 씨앗”
AI 메모리 수요 지속이 관건
공장증설이 다음 사이클 변수
인공지능(AI) 열풍이 메모리 반도체 업계를 다시 황금기로 밀어 올리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가격은 뛰고, 이익 전망은 급격히 높아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AI 반도체 기대를 타고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반도체 호황은 늘 같은 질문을 남긴다. “이번에는 다를까”라는 질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제임스 매킨토시 칼럼니스트는 16일(현지시간) 스트리트와이즈 칼럼에서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3년 전 사상 최대 손실을 냈지만, 앞으로 12개월 동안 1000억달러에 가까운 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됐다고 짚었다. 마이크론과 더불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메모리 사이클의 최적 구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AI 데이터센터가 HBM과 D램 수요를 끌어올리면서 가격과 이익, 주가가 동시에 뛰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의 구조다. 팹, 즉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는 막대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수요가 먼저 뛰면 공급은 몇 년 뒤에야 따라온다. 그 사이 가격과 이익은 크게 오른다. 높은 이익은 다시 경영진에게 증설을 부추긴다. 하지만 새 공장이 한꺼번에 돌아가기 시작하면 상황은 바뀐다. 고정비가 큰 반도체 기업들은 수요가 꺾여도 공장을 쉽게 멈추지 못한다.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 가격은 빠지고 이익은 급감한다. 2022~2023년 메모리 불황이 바로 이런 구조에서 나왔다.
다만 매킨토시는 당장의 위험이 공급보다 수요 쪽에 가깝다고 봤다. 올해와 내년에 추가되는 생산능력만으로는 AI 수요가 유지되는 한 이익을 크게 흔들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문제는 AI 모델이 메모리를 덜 쓰는 방향으로 빠르게 효율화되거나,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이 줄어들거나, AI 도입 속도가 기대보다 늦어질 경우다. 이 경우 현재의 높은 메모리 가격과 이익 전망은 흔들릴 수 있다.
증설 경쟁은 그 다음 변수다. 매킨토시는 마이크론이 뉴욕·아이다호·버지니아 공장 건설과 확장에 1500억달러를 투입하고, 한국에서도 새 팹들이 문을 열고 있다고 짚었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캠퍼스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을,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충북 청주 M15X를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다. 수요가 계속 늘면 새 공급은 흡수될 수 있지만, 수요가 먼저 흔들리면 증설은 메모리 업황 하락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변수는 경쟁이다. HBM 같은 초고속 메모리 분야에 새 경쟁자가 단기간에 대거 들어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AI 반도체 전반에서는 이미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매킨토시는 엔비디아의 높은 이익률이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 아마존의 그래비톤 중앙처리장치(CPU), 세레브라스 같은 새 반도체 기업의 등장을 자극했다고 짚었다. 수요가 폭발하는 동안에는 새 공급이 흡수될 수 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경쟁자와 더 많은 생산능력이 들어온다.
결국 반도체 호황이 “멸망의 씨앗”으로 불리는 이유는 호황 자체가 다음 불황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가격이 오르면 기업들은 공장을 짓고, 공장이 늘면 공급이 쌓인다. 이때 수요가 조금만 흔들려도 가격은 빠질 수 있다. 매킨토시는 이를 두고 “모든 원자재와 마찬가지로 성공은 스스로 멸망의 씨앗을 뿌린다”고 표현했다. AI 수요가 실제로 커지더라도, 반도체 기업들이 동시에 공장을 늘리는 순간 메모리 산업 특유의 사이클은 다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