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48 연도 등대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보물 숨겼다는 보물섬

2026-05-22 12:59:58 게재

전남 여수의 섬 연도는 옛날 해적섬이자 보물섬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숨겨뒀다는 보물 이야기가 전해온다. 연도의 ‘소리도’ 등대 아래 솔팽이굴이 그곳이다.

1627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무역선이 일본에서 황금을 싣고 인도네시아 식민지로 가던 중 해적선에 쫓기자 솔팽이굴에 급하게 황금을 숨겨 놓고 도망쳤다고 전한다.

무역선 선장은 황금의 위치를 성경책에 지도로 그려뒀다. 350년의 세월이 흐른 1972년 네덜란드계 미군이 한국 근무를 하게 됐다. 어느날 그 미군이 카투사였던 연도 출신 손연수씨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자신의 조상이 한국 섬에 숨겨둔 황금 이야기를 전했다. 지도에는 그 섬이 연도의 옛 이름인 소리도로 표시되어 있었다. 손씨는 제대 후 동굴을 탐사했으나 찾지는 못했다.

연도에는 또 다른 보물 이야기도 전한다. 후백제 왕 견훤의 사위 박영규가 숨겨뒀다는 보물이다. 순천의 호족 박영규는 후백제 건설과 발전에 공을 세웠는데 후일에는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기여했다. 그의 세 딸은 왕건의 부인인 동산원부인과 정종의 후비인 문공왕후와 문성왕후가 되었다.

아름다운 해변 숲길은 보물섬 연도의 진짜 보물이다. 사진 섬연구소 제공

박영규는 서남해 제해권을 장악하고 해상무역을 독점해 부를 축적한 무역상이었다. 당시 연도는 박영규의 해상근거지였다. 박영규가 연도의 동굴에 엄청난 금덩어리를 숨겨뒀다는 전설이다.

연도에는 모험 영화의 단골 소재인 해적의 전설도 있다. 연도의 해적은 시대와 이름까지도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혼란을 틈타 장서린이란 해적 두목과 부하 수백명이 연도 필봉산 중턱에 청기와 망루를 지어놓고 해적질을 했다. 해적들은 관군에게 소탕됐지만 섬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서린이 큰 도둑놈 집터’라 부른다. 연도 노인들은 어렸을 때 “장서린이가 큰 도둑이었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유적에서 보물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청기와 조각은 발견됐다. 해적의 청기와 망루 전설이 증명된 것이다.

연도는 금오열도 끝에 자리하고 있다. 섬 중앙 시루봉 모습이 솔개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흡사해서 본래 소리섬 혹은 소리도라 불렀다. 섬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솔개 연(鳶)자를 써서 연도(鳶島)가 됐다. 주민들은 지금도 소리도라 부르고 등대 이름도 여전히 ‘소리도’ 등대다. 현재는 300여명의 주민들이 살지만 전성기에는 400여 가구 1800여 명까지 살았다.

여객선이 드나드는 연도의 관문은 역포마을이다. 옛날 제주도로 가는 배들이 들러서 쉬어가던 곳이라 역포란 이름을 얻었다. 연도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어업이 융성해 부촌으로 이름난 섬이었다. 그때는 140여척이나 되는 어선이 있었지만 저인망 어업이 금지되면서 어업이 급속히 쇠퇴해 지금은 몇척 남지 않았다.

섬의 남쪽 필봉산(231m) 자락에 있는 소리도 등대는 연도의 상징이다. 어느 섬이나 등대가 있는 곳은 풍광이 가장 수려하다. 눈에 잘 띄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리도 등대는 1910년 10월 4일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시작은 일제 대륙 침략의 앞길을 밝히는 제국의 등대로 설치됐지만 지금은 항해하는 선박들의 앞길을 밝혀 주는 생명의 등대가 됐다.

이곳에는 백섬백길 21코스 ‘연도등대길’이 있다. 연도 마을에서 등대를 지나고 산길을 돌아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7㎞의 트레일이다. 4시간 정도 걸리는 아름다운 해변 숲길은 보물섬 연도의 진짜 보물이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