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팔면 다음날 돈 받는다” 결제주기 단축 논의 본격화
“글로벌 자본시장 새로운 기준”… “증시 신뢰·경쟁력 위해 미룰 수 없어”
속도보다 안정적 이행 중요 “인프라 개선 선행돼야” … 외환 접근성 제고
국내 증권시장 결제주기를 현행 ‘T+2’(거래 후 2영업일 결제)에서 ‘T+1’(1영업일 결제)으로 단축하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결제주기 단축은 글로벌 자본시장의 새로운 기준인 만큼, 국내 증시 신뢰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다만 속도보다는 안정적 이행이 중요하다는 신중론도 나왔다. 전산 자동화 등 인프라 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결제 불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의 결제 자금 조달에 문제가 없도록 외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개미투자자들의 자금 운용 자유를 돌려드리는 일” =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진행된 ‘증권시장 결제주기 단축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증권시장도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에 걸맞은 거래 및 청산결제 환경을 갖춰야 한다”며 “결제주기 단축은 우리 증권시장의 시계를 글로벌 자본시장의 속도에 맞추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이사장은 “미국이 결제주기를 단축하며 고도화에 나섰고, 유럽과 홍콩도 전환 일정을 발표하고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우리 자본시장도 언제, 어떻게 이행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용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결제주기 단축은 수백만 개미투자자들의 자금운용 자유를 돌려드리는 일이자, 정부의 규제합리화 약속을 실천하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결제주기란 주식을 매매한 날(T)로부터 실제 대금과 주식의 청산 및 결제가 완료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결제주기 단축은 주식거래 투자자의 현금 상환기일을 앞당기는 것보다 주식거래의 최종 결과인 결제위험을 줄이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미결제 수량 감소와 거래증거금 부담 완화를 통해 신용·시장 위험을 줄이고 시장의 유동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다.
◆올 하반기 업무표준안 마련 = 최훈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본부 부장은 주요국의 결제주기 단축 추진 동향과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응 경과에 관해 발표했다. 지난 4월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금융투자협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미국과 유럽 현지조사 시사점도 공유했다.
최 부장에 따르면 미국·캐나다 등 북미권 국가들은 2024년부터 T+1 제도를 시행했고, 유럽연합(EU)과 영국·스위스 등은 내년 10월 도입을 준비 중이다. 홍콩도 내년 4분기 시행 계획을 밝히는 등 아시아권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에 맞춰 최 부장은 올해 하반기 결제주기 단축 실무 업무표준안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성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결제주기 단축의 기대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노 연구위원은 “결제주기 단축 시 가격 변동 위험과 거래상대방의 도산 위험이 줄어들고 증거금 부담 완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특히 작년 일평균 결제대금 약 1조600억원과 기준금리 2.55%를 고려하면 하루 약 7400만원의 유동성 개선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위험요인도 있다. 노 연구위원은 “1결제실패 증가 2시스템 투자비용 ③특정시간대 환전수요 집중(외국인) 등 위험요인이 있다”며 “결제 실패 시 시장 신뢰 훼손 우려가 있는 만큼 업무 정확도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북미와의 시차로 업무 시간이 압축될 수 있고, 대차거래 상환 처리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이에 노 연구위원은 ①후선업무 자동화(STP) 2증권대차 인프라 효율화 ③외환시장 접근성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개인, 자금 회전율 높일 수 있어 =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개인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 기관투자자 간 시각차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개인투자자들은 매도 대금을 하루 이상 빨리 받을 수 있어 유동성과 기회비용 측면에서 사회적 편익이 크다고 환영했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 측은 외환 조달과 결제 자동화 부담이 커져 한국 투자 비중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슈퍼개미로 알려진 이정윤 세무사는 “국내 주식 투자자가 1500만명에 달하며, 증시 거래대금의 약 64%가 개인투자자 자금”이라며 “매도 대금 수령이 최대 1.5일까지 늦어지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종석 부산대 투자동아리 회장은 “가상자산 시장은 버튼만 누르면 즉시 돈이 들어오는데 왜 주식시장은 여전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일반 투자자들은 의문을 갖고 있다”며 “결제주기 단축은 자금 회전율을 높이고 투자 편의성을 높이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수거래 활용 투자자는 거래 환경이 불편해질 수 있어 충분한 사전 안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수거래 투자자는 결제주기 단축 시 결제대금(미수금)을 하루 일찍 마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환전·시차 부담 우려 = 증권업계와 외국인 투자자들은 속도보다 인프라 개선과 외환 접근성 제고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승진 미래에셋증권 본부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여전히 수작업 기반 결제확인 과정에 의존하고 있다며 전산 자동화가 확립되지 않으면 결제 불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은아 SK증권 IT인프라본부 본부장 또한 “속도보다 안정적 이행 조건을 먼저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본부장은 “T+1은 시스템 전반을 재설계하는 일”이라며 “ETF(상장지수펀드)의 유동성공급자(AP·LP) 업무와 증거금 처리 방식, 예수금 산출 체계 등에 대한 전면 수정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상임 대리 기관인 SC은행의 김미강 이사는 “비거주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개인투자자와 달리 매매일부터 결제일까지 3일에 걸쳐 결제를 위해 별도 작업이 필요하다”며 실무적 측면을 고려해달라고 했다. 그는 인프라 개선 없이 결제주기를 단축할 경우 국내 시장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투자자 단체인 린든 차오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ASIFMA) 이사는 “한국 시장의 지연결제율은 0%에 가까워 미국의 2~3%와 유럽의 7%보다 낮다”며 “결제주기 단축에 있어서 미국 등 선진시장을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은 24시간 달러·유로 유동성이 풍부하지만 원화는 그렇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그는 “편익과 비용을 비교해 봐야 한다”며 “속도보다 순서가 중요한 만큼, 결제주기 단축의 사전과제로 옴니버스 시장 체제 형성과 외환 유동성 등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결제 자동화 인프라 구축 필요성이 함께 제시됐다. 최항진 한국예탁결제원 증권결제본부장은 “예탁결제원은 글로벌 자산운용회사가 옴니버스 계좌를 통해 통합 주문, 펀드별 개별 결제가 가능하도록 전문 시스템 개편을 지난 4월 말에 완료했고, 거래정보 자동 전달 시스템 구축도 현재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외국계 투자자도 현재 제도를 두고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접점을 찾아나갈 방법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장점을 최대화하면서도 전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