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성장 멈춘 기업엔 분배도 없다
기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오래된 논쟁처럼 보이지만 최근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다시 한 번 기업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만든다.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노사 갈등부터 대주주의 투자 회수 전략, 경영권 분쟁까지 표면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공통된 질문으로 수렴된다. 기업의 성장과 지속 가능성이 무너지면 노동과 투자, 고용은 어디에 기대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최근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협상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조는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 기준 변경을 요구했고 회사는 기존 원칙을 유지하려 했다. 표면적으로는 보상 체계를 둘러싼 충돌이었지만 본질은 기업 성과를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었다.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배경에는 파업 장기화가 기업 경쟁력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파업 현실화 시 생산 차질과 실적 악화 우려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노사 모두 기업의 성장 기반 훼손이 자신들에게도 손실이라는 점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반면 홈플러스는 성장이 멈춘 기업이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점포 폐점과 납품 축소, 매출 감소가 이어지며 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회생절차 이후 거래 신뢰가 무너지고 공급망이 흔들리자 상품 부족과 고객 이탈이 이어졌고 이는 다시 매출 감소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그 결과 수천 명 규모의 인력 감소가 현실화됐다.
유통업에서 숙련된 현장 인력과 안정된 조직은 단순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의 핵심이다. 그러나 기업의 성장 동력이 약화되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최근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임금보다 영업 지속과 점포 유지, 기업 정상화를 우선 요구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노동자들에게 기업은 단순한 임금 지급처가 아니라 생계와 삶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역시 단순한 지배구조 갈등만으로 보기 어렵다. 미국 내 대규모 핵심광물 제련 프로젝트 등 장기 투자 계획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누가 기업의 전략적 방향을 결정하느냐는 수조원 규모 투자와 미래 고용 연속성 문제로 이어진다. 단기 수익성과 재무 효율 중심 경영이 강화될 경우 장기 프로젝트와 산업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고려아연 노조가 지방선거 공약에 기업 안정 운영을 요구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기 투자가 유지돼야 지역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 역시 지속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물론 기업 경영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필요하다. 주주가치 제고와 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은 자본시장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떠한 논리도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토대 없이 완성될 수는 없다. 분배 역시 성과가 존재할 때 가능하고 고용 안정 역시 기업이 살아남아야 유지된다.
삼성전자 사례는 성장하는 기업 안에서 노사가 충돌하더라도 결국 성장의 필요성이 타협을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홈플러스 사례는 성장 동력이 사라진 기업에서 노동과 생계가 얼마나 빠르게 위협받는지를 보여준다. 고려아연 사례는 장기 투자와 산업 전략이 기업 경영 안정성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드러낸다.
노사 갈등과 경영권 분쟁, 투자자와 노동자의 이해 충돌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분명한 점은 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주주가치도, 고용 안정도, 산업 경쟁력도 오래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오래 살아남는 기업이 강한 기업이고, 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기업 경영의 가장 현실적인 사회적 책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