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고령화·복지 폭탄에 글로벌 재정 비상”
주요국, 정년연장·지출구조조정 전방위 개혁 착수 … 2024년 OECD 국가채무 GDP 대비 110% 돌파
전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인구 고령화와 복지지출 급증, 대외안보위기 확산이라는 삼중고를 맞아 대대적인 재정개혁의 칼을 뽑아 들었다고 기획예산처가 분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전례 없이 늘어난 국가 채무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비용이 각국 정부의 숨통을 조여오자, 연금과 의료, 교육, 행정 등 공공재정 전 분야를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생존작전’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28일 기획처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들의 재정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주요국의 재정개혁 사례를 심층 분석한 ‘공공재정 회복 보고서’를 전날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프랑스 파리에서 27일부터 28일까지 열리고 있는 ‘OECD 공공재정회복 포럼’과 제48차 OECD 고위예산당국자위원회 연례회의의 핵심 안건으로 상정돼 집중적인 논의를 거쳤다.
◆위기의 공공재정 = OECD 분석에 따르면, 현재 회원국들이 직면한 재정 건전성 우려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대규모 재정투입과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연금 지출의 자연 증가, 여기에 최근 중동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국방비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보고서는 선진국들의 재정 부담이 한계상황까지 치닫고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OECD 회원국들의 평균 국가채무는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73% 수준으로 비교적 양호하게 관리됐다. 하지만 2024년에는 무려 110%까지 치솟았다. 채무가 늘어나면서 이자 비용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국가채무 이자 지출은 2020년 GDP 대비 1.9% 수준에서 2025년 3.3%까지 급증했다. 벌어서 이자 갚는데 들어가는 나랏돈의 비중이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선진국들의 3대 재정 생존전략 = 보고서는 OECD 회원국들이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 중인 지출 구조조정과 재정 개혁의 방향성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는 오스트리아 방식의 종합적 전략이다. 오스트리아는 특정 부처에 부담을 지우는 대신, 전 부처와 전 분야를 대상으로 지출 증가율을 전반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모든 부처가 재정절감 목표를 공평하게 분담하며, 연금과 가족 지원, 환경 보조금 등 표를 의식해 줄이기 어려웠던 핵심 의무지출까지 전방위적으로 조정했다. 동시에 정부 운영비 절감을 병행하는 대대적인 재정개혁을 실행하고 있다.
두 번째는 캐나다의 선택적 전략 방식이다. 캐나다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백지상태에서 대폭 재조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공공 부문의 경상지출과 정부 운영비, 기존 프로그램 지출을 과감하게 감축하는 대신,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과 직결되는 핵심 투자 분야는 재원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재정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북유럽의 구조적 개혁 방식이 세 번째다. 덴마크와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눈앞의 단기적인 지출 삭감에 연연하지 않고 경제·사회 시스템 자체를 개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노동시장 참여 확대를 통해 세원을 넓혔다. 공공부문의 디지털화와 행정 효율화를 단행해 중장기적으로 재정의 구조적 지속가능성과 국가 경쟁력을 동시에 높이는 고차원적 전략이다.
◆정년 연장과 급여 축소 = OECD 국가들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재정 압박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연금, 의료, 장기요양 등 사회지출 부문이다. OECD 회원국의 연금 지출은 2023년 기준 GDP 대비 평균 9.4%로 전체 나랏돈 중 가장 비중이 큰 항목이다. 여기에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앞으로 정부가 짊어져야 할 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주요국들은 △정년 연장 △연금 수급 연령 상향 △보험료율 인상 △인구지표와 연계한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강력한 메스를 대고 있다. 벨기에는 2030년까지 법정 정년을 현행 65세에서 67세로 높이기로 했다. 덴마크는 2040년부터 정년을 69세에서 70세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우리나라 역시 재정 고갈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33년까지 13%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주요국들은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를 유도해 연금 재정의 고갈 시점을 늦추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실업급여 분야에서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확산되고 있다. 전반적인 급여 수준을 낮추는 ‘급여 관대성 축소’를 비롯해, 급여를 받기 위한 수급 요건을 까다롭게 강화하고 부정수급에 대한 통제를 대폭 높여 재정 누수를 막고 있다. 동시에 나랏돈에 의존하는 대신 청년과 여성 등 취약계층이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경제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고용 활성화 정책이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전방위 ‘재정체질 개선’ = 국가 재정의 또 다른 뇌출혈 부위인 의료와 장기요양 분야(2023년 기준 OECD 평균 GDP 대비 약 7% 지출) 역시 대대적인 통제에 들어갔다. 주요국들은 고가 의약품과 시술에 대한 승인·관리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입원 중심의 의료체계를 외래 중심 및 통원 치료 체계로 전격 전환하고 있다. 사후 치료보다는 예방의학과 조기진단을 확대해 의료비 증가의 원인을 원천 차단하는 방식이다.
특히 일본은 약가 조정과 의약품 가격 통제를 대폭 강화해 제약 지출의 증가세를 억제하고 있다. 상당수 회원국들이 환자의 자기부담금을 늘리거나 민간보험의 역할을 확대해 공공재정이 지는 부담을 민간으로 분산시키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원격의료와 행정절차 간소화도 비용 절감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장기요양 부문에서는 독일의 사례처럼 시설 중심의 돌봄을 비용이 적게 드는 재가(가정) 중심 돌봄으로 바꾸고, 수급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해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학령인구 감소에 직면한 OECD 국가들은 고등교육(대학) 분야에서 공공재원 의존도를 낮추고 기부금이나 등록금 등 비정부 재원 분담을 확대하고 있다. 또 학생 수 감소에 맞춰 학교와 학급을 통폐합해 운영비를 줄이고, 교육행정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전반적인 교육시스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구조개혁을 본격화하고 있다.
나아가 공공행정 자체의 군살 빼기도 한창이다. 인력 최적화와 조직 통폐합, 디지털 행정 정착을 통해 정부 운영비 자체를 줄이는 한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기능 재배분, 지방정부 교부금의 개편과 감축, 재정조정제도 개편 등을 통해 국가 전반의 재정 관계를 효율화하는 수술이 진행 중이다.
◆“과감한 구조개혁” 강력권고 = OECD 보고서는 회원국들이 재정 건전성 회복의 시급성에는 일제히 공감하고 뜻을 모으고 있지만, 현재 추진 중인 재정개혁의 수준이 대체로 기존 제도를 미세 조정하는 ‘점진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인구 고령화의 폭발력과 전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 우크라이나·중동 분쟁 등으로 인한 안보비용 증가 등 구조적인 재정 압박의 크기를 감안할 때, 현재의 미봉책을 넘어 기존 틀을 깨는 ‘보다 과감한 구조개혁’ 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기획예산처는 “이번 OECD 보고서가 글로벌 고물가·고금리 파고 속에서 주요 선진국들이 생존을 위해 펼치고 있는 재정개혁의 흐름과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나침반으로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예산실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인구 감소와 복지 지출 증가라는 구조적 재정 위험 요인을 안고 있는 만큼, 이번 OECD 보고서에 제시된 선진국들의 지출 구조조정 성공 사례와 구체적인 수단들을 향후 우리 정부가 재정 운용과 재정 효율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