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속철도 세대교체, ‘움직이는 국가 인프라’ 투자 시급

2026-06-01 13:00:01 게재

철도 인프라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선로 터널 교량 역사와 같은 고정시설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국민의 이동을 실질적으로 완성하는 것은 그 위를 달리는 열차, 즉 차량이다. 아무리 촘촘한 철도망이 구축되어 있어도 차량이 제 때에 투입되지 않거나 현대화 되지 못한다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고정 인프라는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

2004년 대한민국 고속철도 시대를 연 KTX가 2033년부터 순차적으로 차량교체를 진행한다고 한다. KTX의 교체는 단순히 낡은 열차를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철도 시스템을 설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앞으로의 인구구조 변화와 지역 간 이동 수요, 교통약자와 고령자의 이용 편의, 디지털 서비스 전환, 나아가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고속철도의 세대교체를 이루고, 미래 국민 이동서비스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는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 교통정책은 철도 노선과 철도 차량을 별개의 영역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었다. 선로는 정부가 책임져야 할 공공 인프라로 인식된 반면, 차량은 운영기관이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관리해야 하는 투자의 영역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구조는 일정 부분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지만, 현재의 고속철도는 이미 고정시설과 이동장비를 분리하기 어려운 단계에 진입했다. 선로 차량 신호 통신 유지보수 운영 데이터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 시스템의 진화에 대응해, 차량에 대한 투자 패러다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차량 투자에 대한 패러다임 바꿔야 할 때

무엇보다 고속철도 차량은 필요하다고 해서 곧바로 도입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설계 제작 시험 인도까지 최소 5~7년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부터 정책적 판단과 재원 조달 로드맵이 마련되지 않으면, 2030년대는 KTX 노후화와 최대 철도 수요가 맞물려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공급난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오는 3일 개정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공공성과 안전성이 핵심인 철도 차량에 대해 정부와 운영기관이 합리적으로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정책적 통로가 열렸다. 이제는 선로 중심의 고정 인프라에 대한 관성적 투자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인프라’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철도에 대한 투자를 확장해야 한다. 철도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통합 시스템 산업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국가 이동서비스의 품질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장기 자산관리 투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정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영역이다.

고속철도는 전국 반나절 생활권을 통해 국토의 물리적 거리를 압축하고, 거점 도시를 연결해 실질적인 생활권을 확대하는 국가 기간 교통망이다. 승용차보다 탄소 배출 부담이 낮은 친환경 대량수송 수단이자, 국내 첨단 기술 산업에 폭넓은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전략적 자산이다. 고속철도 차량의 세대교체는 단순한 차량 구매 사업이 아닌 국가 산업 경쟁력과 교통체계 전반의 미래 투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KTX 열차 적기 교체 미룰 수 없는 과제

KTX 열차의 적기 교체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KTX 교체 사업은 우리의 철도 정책이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에 대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 지원과 운영기관의 책임있는 자산 관리가 맞물릴 때, 우리는 비로소 전국을 안전하고 촘촘하게 잇는 지속가능한 ‘철도 강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주영

한국교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