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정상회담에서 얻어야 할 교훈

2026-06-01 13:00:02 게재

양국, 제도화된 전략적 협력 관계로 진화 … 현실주의 시각에서 북방정책 재설계를

5월 중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관계를 심화하고 우호·선린·협력을 강화할 추진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국내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끝난 지 불과 나흘 만에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에 주목해 미중, 중러 정상회담의 ‘연관성’을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두 정상회담은 별개의 외교적 사건으로 봐야 한다.

첫째, 푸틴 대통령의 5월 말 방중 일정은 이미 2월에 확정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일정은 당초 3월이었다가 미국-이란 전쟁 발발로 5월로 변경되었다. 즉 두 사건의 ‘연관성’에 대한 과도한 상상은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시야를 흐리게 할 뿐이다.

둘째, 9년 만에 대통령 자격으로 다시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과 이번에만 무려 25회째 중국을 방문하는 푸틴 대통령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셋째, 양자관계의 성격 자체도 달랐다. 미중관계는 전략경쟁과 상호견제의 성격을 갖지만, 중러관계는 전략협력을 기반으로 한다. 러시아 고등경제대학의 세르게이 치이플라코프 박사에 따르면 미중관계에서는 ‘신뢰’자체가 첨예한 쟁점 사안이지만, 중러관계에서는 신뢰를 ‘추가적인’ 강화 조치로 재확인하는 것이기에 성격이 다른 회담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6년 5월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러시아·중국 관계를 주제로 한 사진전을 둘러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러 미래 방향에 대한 포괄적 합의

일각에서는 대규모 통상협정이 체결되지 않았기에 중러 정상회담의 성과를 낮게 평가한다. 양국은 공동성명, 공동선언을 포함해 총 42건의 문서에 서명했는데, 실질 성과가 없었기에 오히려 협정 체결 숫자를 늘려 성과를 과시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공정하게 평가하려면 본질을 제대로 간파해야 한다. 올해는 중러 동반자관계 및 전략적 협력 관계를 선포한 지 30주년이자 중러 우호·선린·협력조약을 체결한 지 25주년 되는 해다. 그렇다고 단순한 의전 행사는 아니었다. 역동적인 30년의 성과를 총결산하고, 미래를 향한 상호협력의 제도적·기술적·인프라 기반을 구축하려는 실무 회담의 성격도 갖는다.

러시아의 러중우호협회 부회장이자 아태지역연구센터장인 세르게이 시나코예프는 △단순 기술거래에서 공동개발로의 전환을 통한 기술 선도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체제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적 금융 및 결제 인프라 구축 가속화 △국민외교와 인문·교육협력 강화로 그 미래 방향을 압축하고 있다.

장문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포괄적 동반자관계 및 전략적 상호작용의 공고화와 선린우호협력관계의 강화’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에서 “주권과 영토보전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평등과 상호이익, 평화적 공존, 사회체제와 발전경로를 선택할 주권적 권리, 문화·역사적 정체성과 전통적 도덕적 가치의 보존” 등의 원칙을 강조했다.

중러관계의 발전을 ‘위협’으로 호도하려는 외부 세계를 향해서는 지금까지‘비동맹, 비대립, 제3국 공격 금지’의 대원칙을 견지했다고 강변했다.

‘다극화된 세계 및 신형 국제관계 확립에 관한 공동선언문’에서는 21세기 국제질서에 일방주의, 패권주의, 진영 대항 및 신식민주의의 역류가 소용돌이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에 맞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신형 국제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포용적·호혜적 협력을 위한 세계의 개방성 △분할 불가능하고 평등한 안보 △국제관계의 민주화 및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개선 △세계 문명 및 가치의 다양성 등의 원칙을 견지할 것을 촉구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공동성명 5장에서 “대외적 고립, 경제제재, 무력 압박 및 기타 방식으로 북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에 반대하고 “지정학적 현실을 바탕으로 전적으로 정치·외교적 수단을 통해, 그리고 주권에 대한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각 당사국의 우려를 고려한 균형된 해결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협력 및 기술동맹 전환 의지 강해

40건의 세부 협정문을 보면 산업협력 및 기술동맹으로 전환하려는 강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몇 개의 협정문이 눈길을 끈다. 러시아의 국영기업 ‘로사톰’사와 중국 과학기술부 간에 통제된 열핵융합 분야 과학기술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또한 러시아의 고등경제대학과 중국의 푸단대학교의 복수석사학위 협력 협정을 포함하여 양국의 고등교육기관 간 학술 및 교육 협력을 강화하는 다수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에너지 협력에 치중된 양자 협력을 혁신 및 첨단기술 분야 등으로 확대하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공동성명은 과학기술 및 혁신 협력의 심화가 양국의 발전 동력을 강화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어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적교류(교육·관광·기업)를 촉진하기 위해 2025년부터 시행된 30일 상호 무비자 제도가 2027년 말까지 연장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조치다.

러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 강화

전문가들은 국경철도역 만주리(중)-자바이칼스크(러) 구간에 중국식 표준궤(1435mm)로 제2주선을 공동 건설한다는 합의를 가장 중요한 성과로 꼽는다. 러시아가 발표한 총 40건의 협정문 목록 중 1순위에 배치되었다. 중러 전체 육상화물의 약 60%가 통과하는 이 구간에는 현재 러시아식 광궤(1520mm)와 중국식 표준궤(1435mm) 열차가 모두 운행되는 단일복합궤도가 깔려있지만, 궤간 차이에 따른 대차 교환이나 환적 등으로 병목현상이 심각했다.

이번 합의는 두 가지 경향을 대변한다. 한편으로는 서방의 제재로 무역로가 동쪽으로 재편된 이후 러시아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강화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교역 증대를 위해 공급망 및 인프라 연결성 강화 등으로 경제협력이 전환되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가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실질적인 협상 진전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중러간 장기 가스 공급 가격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미국-이란 전쟁의 여파 때문이다. 러시아는 중국에 대한 카타르 LNG의 장기 공급이 불투명해지자 거래 조건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파이프라인을 통한 대규모 장기 가스 공급 상대국은 사실상 중국뿐이기에 유리한 위치에 선 중국이 느긋하게 최종합의를 유보하는 전략을 구사했을 것이라는 정반대의 관전평도 나온다.

두만강 유역 개발에 대한 관심과 의지도 재천명되었다. 양국은 공동성명 2장에서 ‘중소 동부지역 국경협정’(1991.5.16.) 제9조와 ‘타라바로프와 볼쇼이 우스리스키 제도 주변 및 인접 수역에서의 중러 선박 항해에 관한 의정서’(2004. 10. 14)에 따라 “북한과 함께 3자 형식으로” 두만강을 통한 출항 협의를 계속하고, 중러 선박 항행 협정안을 마련하는 양자협상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변국의 경계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동해 출해권 요구 압박이 훨씬 강력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단 올 6월 완공이 예정된 북러간 두만강 자동차 철교의 교각높이와 구조를 고려하면 중국의 숙원이 단기간 내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다. 향후 북중러 삼국관계에서 북한의 태도가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볼 대목이다.

중러 사이에는 이해관계의 불일치 영역도 적지 않지만 준동맹에 준하는 협력관계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제3국과의 영토분쟁 문제에 개입해 상대국을 지지할 의사가 전혀 없다. 심지어 중국은 이중용도 제품을 유럽과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고 있고, 러시아는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에 무기를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어찌보면 모두 갈등을 촉발할 요인들이지만 전략적 동반자관계는 훼손되지 않았다. 러시아 고등경제대학의 바실리 카쉰 박사는 상호 ‘레드라인’을 존중하고, 상호 호혜적인 분야에서 양자협력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실용주의 덕분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현실주의적 사고로 ‘기회의 창' 다시 열자

결론적으로 우리는 가치와 이념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구동존이의 자세로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관계를 광범위하게 펼쳐가는 중러관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제재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북방의 시장만이 아니다. 현실주의적인 사고를 깨워야 북방을 향한 ‘기회의 창’을 다시 열 수 있다.

성원용

인천대 교수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