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수사 ‘몸통 추적’ 길 열렸다
‘위장수사 허용’ 마약류관리법 공포
위장 신분으로 최대 3년 잠복수사
그동안 국내 마약 수사는 투약자나 전달책 검거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텔레그램 등 보안성이 높은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 확산되면서 조직 윗선이나 해외 공급책까지 수사를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수사기관이 위장 신분으로 조직 내부에 침투해 총책까지 추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이 최근 공포되면서 마약 범죄 수사를 위한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경찰에 따르면 이번 개정은 지금까지 아동 성착취물 범죄에만 허용됐던 위장수사를 마약 범죄까지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경찰과 검찰은 신분을 숨기거나 위장한 채 마약 조직 내부에 침투해 증거를 수집할 수 있게 됐다. 위장수사 범위도 소지와 매매뿐 아니라 광고, 수수, 운반, 수입까지 확대됐다. 구매자나 운반책, 판매책 등으로 가장해 공급·유통망 전반을 추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위장 신분을 입증하기 위한 문서와 전자기록 작성·변경까지 허용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수사기관은 위장수사를 시도하더라도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 부족해 조직 내부 깊숙이 침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앞으로는 위조 신분증과 관련 서류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장기 잠복수사와 기획수사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신분비공개수사는 수사부서장 승인으로 최대 3개월까지 가능하다. 신분위장수사는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며 3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전체 수사기간은 최대 3년이다. 긴급 상황에서는 우선 수사를 시작한 뒤 사후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수사 현장에서는 조직범죄 수사 역량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위장 신분을 활용한 잠복수사가 가능해지면서 전달책과 수거책을 넘어 중간관리책과 총책까지 이어지는 수사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한 마약 수사에서는 경찰이 전달책을 통해 해외 판매 조직에 접근할 기회를 잡았지만 위장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 없어 수사를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수사관들은 이번 개정으로 조직 내부 신뢰를 확보해 상부 조직까지 추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마약 수사에 위장수사를 활용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조직의 국제화·온라인화에 대응하려면 기존 수사기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경찰은 마약범죄 위장수사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했다. 위장수사 과정의 면책 범위 등을 검토하는 한편 올해 1분기 마약사범 검거 인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온라인 마약사범 검거는 48% 증가했다고 밝혔다. 온라인 마약사범 검거 인원은 2021년 2545명에서 지난해 5341명으로 늘어 전체 마약사범의 40%를 차지했다.
다만 범죄 의사가 없는 사람을 범행으로 유인하는 함정수사 논란과 위법 수집 증거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법원 허가와 최대 3년의 수사기간 제한을 두는 등 수사권 남용을 막는 장치를 마련했다.
마약류 범죄는 거래가 은밀하고 공급·유통 과정이 조직적·분업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기존 수사기법만으로는 범행 실체와 공범 관계를 밝히기 어려웠다. 위장수사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만큼 마약수사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