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생산적 금융과 ‘구조조정 골든타임’
금융권이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미래 성장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금융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저성장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금융이 산업경쟁력 강화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생산적 금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우리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개편 논의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증시는 반도체가 이끌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HBM 등 메모리 수요 증가 기대감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반도체 수출 증가에 따른 효과로 경제 전반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한국 산업 전체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은 정부와 업계의 주요 현안이었다. 중국발 공급과잉과 수익성 악화가 장기화되면서 설비 통폐합과 사업 재편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구조조정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난 분위기다. 정부의 지원책은 나오고 있지만 정작 산업재편에 대한 청사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부품 산업도 마찬가지다.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전환은 이미 진행형이며, 내연기관 중심 부품업체 상당수는 사업 모델 변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업계 전반의 구조개편 논의는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 사업체 2만1000개 중 미래차 전용 부품업체는 578개사에 불과하고, 사업전환·다각화를 추진하거나 계획 중인 업체 비중도 6.1%에 그친다.
구조조정은 위기가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위기가 닥치면 기업은 버티기에 급급하고 금융권은 부실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고용과 지역경제 충격을 우려해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위기 이후의 구조조정은 더 많은 비용과 더 큰 후유증을 남긴다. 문제가 터진 이후에 진행된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이 대표적이다.
생산적 금융의 본질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단순한 자금공급이 아니라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본을 배분하는 일이다. 성장산업에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고, 경쟁력이 약화된 산업은 재편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찾도록 해야 한다. 금융권은 높은 수익성과 충분한 자본여력을 바탕으로 산업 재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상황이다.
증시 상승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숙제는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구조개편은 한국 경제의 체력을 미래로 이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생산적 금융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된다. 반도체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지금이 구조개편을 추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