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어르신을 돌본다' 지역돌봄 새 축
통합돌봄지원 노인일자리사업 … 3만700여명 참여, 지역별 특성 살린 우수사례 확산
‘돌봄을 받는 노인’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노인’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노인일자리가 단순한 소득보전 수단을 넘어 지역사회 돌봄체계의 핵심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8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올해 3월 시행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에 맞춰 추진 중인 ‘통합돌봄 지원 노인일자리사업(통합돌봄 보살펴드림)’에 전국 3만675명의 노인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돌봄이 필요한 이웃 노인을 직접 찾아가 건강을 살피고 식사를 지원하며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돌봄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만으로는 증가하는 돌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노인들이 지역사회 돌봄 주체로 참여하는 새로운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건강관리 중심으로 운영… 참여자 86% 집중 = 복지부가 집계한 참여자 현황을 보면 건강관리 분야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전체 참여자 3만675명 가운데 건강관리 직무에 참여하는 인원은 2만6419명으로 전체의 86.1%를 차지했다. 이어 식사 지원 2043명(6.7%), 위기가구 발굴 1145명(3.7%), 주거환경 개선 545명(1.8%), 위생 지원 523명(1.7%) 순으로 나타났다.
건강관리 분야 참여자들은 홀몸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대상으로 안부 확인, 건강상태 점검, 복약 지원, 병원 동행, 정서지원 등을 담당한다.
특히 병원 진료 예약부터 이동, 진료 접수, 약국 이용까지 지원하는 서비스는 고령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지역사회에서 의료·건강 돌봄 수요가 가장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돌봄통합지원법의 핵심 목표인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는 지역사회 계속거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예방적 건강관리 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 위기가구 발굴부터 집수리까지… 생활밀착형 돌봄 확대 = 통합돌봄 지원 노인일자리는 단순 방문서비스를 넘어 다양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기가구 발굴 사업은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 경력 등을 가진 노인들이 지역 내 고위험군을 찾아내고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생필품 지원, 복지용구 대여, 복지상담 연계 등도 함께 수행한다.
식사 지원 사업은 밑반찬과 도시락 제조·배달을 통해 영양관리가 취약한 노인들의 건강을 지원한다. 주거환경 개선 사업은 노후주택의 조명 교체, 안전손잡이 설치, 화재경보기 점검, 미끄럼방지 장치 부착 등 안전사고 예방 중심으로 운영된다.
위생 지원 분야에서는 이불과 의류 세탁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안부를 확인하고 고립 위험 여부를 점검한다. 단순 세탁 서비스가 아니라 돌봄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창구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 다양한 돌봄모델 배우기 =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돌봄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고독사 예방 게이트키퍼’ 사업을 통해 고립 위험군을 조기에 발굴하고 있다. 참여 노인들은 고독사 위험도 판단도구를 활용해 위기 상황을 점검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119나 복지위기 알림체계와 연계한다.
인천에서는 ‘위기노인 보호상담 지원사업’을 운영하며 우울척도 검사와 기초상담을 통해 정신건강 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하고 있다. 상담 결과에 따라 전문기관 연계와 복지서비스 제공이 이뤄진다.
전주의 ‘통합돌봄 서포터즈’는 2인 1조로 가정을 방문해 체온 측정, 혈압·혈당 확인, 인지 프로그램 운영, 건강상태 점검 등을 실시한다. 건강데이터를 분석해 필요시 병원 진료나 추가 돌봄서비스로 연결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제주의 ‘아름동행 병원동행 매니저’는 병원 이용이 어려운 노인들의 진료 전 과정을 지원한다. 이동 지원부터 진료 접수, 약국 이용까지 함께하며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경남 밀양의 ‘고쳐드림 사업’은 전기·설비·도배·장판 등 생활수리 경험을 가진 신노년층이 취약계층 가정을 방문해 집수리와 안전점검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노인의 기술과 경험이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활용되는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강원지역 공공이불빨래방 사업 역시 세탁서비스와 안부 확인을 결합해 복지와 일자리,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 노인일자리, 통합돌봄 핵심 인프라로 성장 = 전문가들은 통합돌봄 지원 노인일자리가 단순 일자리 정책을 넘어 지역사회 돌봄체계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한다.
현재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독거노인 증가와 가족 돌봄 기능 약화로 인해 지역사회 중심 돌봄체계 구축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건강한 노인이 또 다른 노인을 돌보는 구조는 돌봄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면서 사회참여와 소득 창출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복지부는 올해 9월 직무매뉴얼을 개발·배포하고, 10월에는 지방자치단체와 수행기관 대상 사업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2027년부터는 수행기관 평가에 관련 지표를 반영해 사업 확대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임을기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관은 “통합돌봄 보살펴드림 사업은 어르신이 지역사회 돌봄의 주체로 참여해 이웃을 살피는 새로운 모델”이라며 “초고령사회에서 노인일자리가 통합돌봄의 빈틈을 메우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수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