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 ‘제로화’ 넘어 ‘제대로 된 처우’로
구청 청사를 청소하고 학교 급식을 조리하고 도서관을 지키는 사람들. 우리가 매일 스치는 이 노동자 상당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이다. ‘좋은 일터’의 본보기여야 할 공공부문에서조차 이들의 처우는 녹록지 않다. 몇 해 전 ‘비정규직 제로’를 내걸고 약 20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기관마다 들쭉날쭉한 처우, 같은 일을 하고도 다른 월급을 받는 현실은 그대로 남아있다. 고용은 안정됐을지 몰라도 ‘얼마나 제대로 대우받느냐’는 뒷전이었다.
지난 수년간 이 외면된 쟁점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지난해 12월 비정규직의 낮은 처우와 고용불안을 거론하며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올해 1월 국무회의에서는 공공기관이 으레 최저임금만 주는 관행을 두고 ‘부도덕하다’고 지적했다.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일수록 적정임금을 보장하고 수익만 따지는 평가 방식도 바꾸라고 주문했다. 정부부터 모범적인 사용자가 되라는 요구였다.
이에 대한 답이 지난 4월 관계부처가 함께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개선 대책’이다. 정부가 약 2100개 기관을 거의 빠짐없이 조사한 결과는 씁쓸했다. 기간제 노동자 약 14만6000명 중 절반이 계약 1년 미만이었고 그중 지방자치단체 비중이 64%를 넘었다. 1년을 채우기 직전 계약을 끊는 ‘쪼개기 계약’의 실상도 드러났다. 월급은 기간제 노동자 평균 289만원인데 1년 미만은 280만원으로 더 낮았고 같은 청소·사무 일도 소속 기관에 따라 수십만원씩 갈렸다. 정규직과 견주면 급식비·복지포인트·명절 상여금 같은 기본 혜택조차 받는 비율이 낮았다.
일한 만큼, 불안한 만큼 보상해야
대책의 첫 단추는 ‘일한 만큼, 불안한 만큼 제대로 보상하는 임금’이다. 계약이 짧을수록 더 큰 불안을 떠안는 만큼, 그 불안정성도 임금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2027년부터 1년 미만 기간제 노동자에게 계약 기간에 맞춰 공정수당을 주되 계약이 짧을수록 보상 비율을 높이는 기준이 그래서 의미가 있다. 저임금 기간제 노동자에게는 생활임금 평균, 곧 최저임금의 118% 수준을 ‘적정임금’으로 보장한다. 기관마다 제각각이던 임금체계를 정비하고 ‘같은 일 다른 월급’이라는 불합리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다. 임금만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진 않지만, 제대로 된 보상 없이는 고용안정도 차별 해소도 말하기 어렵다.
두 번째는 ‘비정규직 활용 기준의 명확화’다. 상시·지속 업무는 정규직으로 뽑는다는 원칙을 다시 못 박고 1년 미만 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쪼개기 계약을 근절한다. 있으나 마나 했던 채용 사전심사제도 손본다. 거의 모든 기관이 도입했지만 승인율이 95%에 육박해 사실상 ‘통과 도장’이었던 탓이다. 앞으로는 외부 위원을 반드시 넣어 ‘정말 비정규직으로 뽑아야 할 일인지’를 깐깐하게 따지고 비용을 아끼려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를 함부로 쓰던 관행에도 제동이 걸린다.
세 번째이자 가장 눈여겨볼 단추는 ‘말로 끝나지 않게 하는 장치’다. 좋은 정책도 평가와 연결되지 않으면 겉돌기 마련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 지표를 공공기관·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 새로 넣거나 비중을 키우고 중앙정부·자치단체 평가에도 반영을 검토한다. 노동부에는 전문가 중심의 ‘비정규직 고용심사위원회’를 둬 공정수당과 적정임금이 제대로 지급되는지, 채용 사전심사제가 내실 있게 운영되고 공정한 채용 관행이 현장에 뿌리내렸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도록 할 예정이다. 대통령이 콕 집은 ‘수익 위주 평가’의 무게추를 사람과 노동의 가치 쪽으로 옮기는 셈이다.
이제 ‘돈 앞에서의 머뭇거림’ 안돼
이제 공은 정부에 넘어왔다. 좋은 대책을 내놓는 일과 끝까지 책임지는 일은 다르다. 정부가 감당해야 할 책무는 분명하다. 첫째, 예산이 끊겨서는 안 된다. 공정수당과 적정임금이 2027년 예산에 온전히 반영되고 이후로도 매년 안정적으로 이어지도록 국회와의 협의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몇 해 전 정규직화 정책의 힘을 뺀 결정적 이유가 ‘돈 앞에서의 머뭇거림’이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재정을 핑계로 약속이 흐지부지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정부 몫이다.
둘째, 제도가 형식에 그쳐선 안 된다. 비정규직 고용지표를 평가제도에 확실히 반영하고 사전심사제에는 외부 위원을 넣어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이런 강제 장치가 없으면 처우개선은 또다시 ‘말로만 한 약속’이 되기 쉽다.
셋째, 당사자와 함께 가야 한다. 처우개선은 정부의 선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9월 출범하는 공무직위원회에서 노동자·정부·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현장의 목소리가 제도에 녹아들어야 한다. 나아가 이 변화를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존중받으며 일할 권리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있을 수 없다. ‘비정규직 제로’로 시작한 노력이 ‘제대로 된 처우’로 이어질 때 공공부문은 비로소 ‘좋은 일터’라는 이름값을 하게 될 것이다.
채준호 전북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