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경제 시대, 소비자 보호 사각지대
전화상담 없는 서비스 42% … 해지·환불 장벽 여전
공정위도 다크패턴 우려 … “가입보다 해지 어렵다”
구독경제가 일상 소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소비자 보호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객센터 접근성이 낮고 해지·환불·위약금 분쟁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최근 쇼핑·배달·택시·세탁·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음악 등 6개 분야 주요 유료 구독서비스 19개를 대상으로 고객센터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 8개 서비스(42.1%)는 전화 고객센터를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화상담이 가능한 서비스도 접근성이 높지 않았다. 모바일 앱에서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확인하거나 상담원과 연결되기까지 평균 4.8단계를 거쳐야 했다. 일대일 채팅 상담 역시 평균 5.6단계를 거쳐야 이용할 수 있었다. 일부 해외 플랫폼은 여러 차례 메뉴 선택과 웹페이지 이동, 재로그인 절차를 요구하는 등 상담 과정이 복잡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단순한 고객 불편을 넘어 구독경제 확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소비자 보호 공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구독경제는 신문·잡지와 정수기 렌탈을 넘어 OTT, 음악 스트리밍, 전자책,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서비스, 가전제품 등 생활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월 이용료만 내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함을 누리지만 계약 변경이나 해지·환불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서비스가 비대면 환경에서 운영되면서 고객센터 접근성은 소비자 권익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가 온라인쇼핑 이용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선호하는 문의 방식은 전화상담(46.5%)이었다. 일대일 채팅 상담은 35.8%, 게시판 문의는 10.3%였다. 인공지능(AI) 챗봇 상담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4.1%에 그쳤다.
피해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하는 곳도 고객센터였다. 응답자의 49.7%가 온라인쇼핑몰 고객센터를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고 답해 입점 판매자에게 직접 연락한다는 응답(22.5%)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50대 이상 소비자의 전화상담 선호 비율은 60.6%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일수록 사람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상담 창구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반면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업무 효율화를 이유로 챗봇과 채팅상담 중심의 비대면 상담 체계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 조사에서도 챗봇 상담의 가장 큰 불편 사항으로 ‘질문과 관련 없는 획일적인 답변’(39.4%)이 꼽혔다. 이어 복잡한 문의에 대한 대응 부족(23.4%), 문의 내용 이해도 부족(21.7%) 순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이 발간한 ‘구독경제와 소비자 이슈’ 보고서도 구독경제 성장에 비해 소비자 보호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계약 해지 절차를 복잡하게 설계하거나 해지 메뉴를 찾기 어렵게 만드는 이른바 ‘다크패턴(Dark Pattern)’을 대표적 문제로 꼽았다.
가입은 모바일 화면 몇 번의 클릭만으로 가능하지만 해지 과정에서는 본인 인증과 추가 확인, 고객센터 문의 등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서비스는 결제 직전까지 총비용을 충분히 알리지 않거나 자동결제 구조를 눈에 띄지 않게 설계해 소비자 불만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는 전화 고객센터를 운영하지 않거나 연락처 확인이 어려운 사업자들에게 개선을 요청했다. 공정위 역시 구독서비스 시장 확대에 맞춰 다크패턴 규제와 소비자 정보 제공 강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독경제 시장 확대에 맞춰 해지 절차와 정보 제공, 고객센터 접근성 등을 포함한 소비자 보호 장치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가입만큼 해지도 쉬워야 하고 소비자가 문제 발생 시 사업자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