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손자병법

코스피 최고치, 을지문덕 경고와 노후자산 운용 지혜

2026-06-12 13:00:15 게재

1일 코스피는 8000p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6월 2일 종가 2698p와 비교하면 놀라운 상승이다. 증시 활황 속에 투자 열기도 뜨겁다. 금융감독원과 노동부가 공개한 퇴직연금 투자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상장지수펀드(ETF)를 중심으로 한 투자 규모는 48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전체 실적배당형 적립금의 40%를 차지하며 퇴직연금의 핵심 투자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수익률 40배 격차, ‘빚투’로 이어지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퇴직연금이라도 운용 방식에 따른 격차는 극명했다. 수익률 상위 10% 계좌는 자산의 약 84%를 펀드와 ETF 등에 투자해 평균 19.4%의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하위 10% 계좌는 자산의 74%를 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어 둬 수익률이 0.5%에 그쳤다. 성과 차이는 무려 40배에 달했다. 자산운용에 대한 관심과 선택이 노후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삼전닉스’ 성과급 논란 역시 또 다른 양극화의 단면을 보여줬다. 자본시장 수익의 격차와 임금격차가 맞물리면서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더 높은 수익을 좇아 주식시장으로 몰려들고 , 특정 지수의 일일수익률을 2~3배 추종하는 레버리지를 이용한 이른바 ‘빚투’까지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투자 자체가 아니라 투자 태도다. 오랫동안 퇴직연금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단기 고수익의 유혹에 휩쓸려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승장에서는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자가 영웅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수익의 친구인 레버리지는 동시에 파산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이다. 그는 수나라 장수 우중문과의 전쟁에서 일부러 물러서는 듯한 전략으로 상대의 교만을 유도했다. 그리고 짧은 시를 보냈다.

신책구천문(神策究天文) 묘산궁지리(妙算窮地理) 전승공기고(戰勝功旣高)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 “이미 공이 높으니 만족할 줄 알고 그만두는 것이 어떠한가.”

그러나 우중문은 그 경고를 헤아리지 못했다. 승리에 취해 더 깊숙이 진군했고 결국 살수에서 참패했다. 30만5000명 대군 가운데 대부분이 전사하고 겨우 2700여명만 살아 돌아왔다고 전해진다. 탐욕과 과신이 부른 역사적 패배였다.

국민연금·퇴직연금, 가입자 이익이 최우선

최근 증권시장을 바라보며 이 시가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하락이 아니다. 불확실성과 쏠림현상이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갈 때 위험은 오히려 커진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국민연금 기금운용 방향을 둘러싼 논란이다. 국내 주식 비중 확대와 관련한 논의를 장기간 비공개하기로 한 결정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 국민연금은 단순한 기관투자가가 아니라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최대 큰손이다. 그 결정은 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주가는 다시 퇴직연금 수익률과 국민의 노후 불안에 직결된다.

따라서 노동부 역시 이를 남의 일처럼 바라봐서는 안 된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노후소득 보장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의 존재 이유다. 국민연금 운용 방향이 퇴직연금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보건복지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가입자 관점의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의 노후자산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부처 간 협력이 이뤄져야 하며, 퇴직연금이 국민연금의 들러리가 돼서는 안 된다. 가입자 이익이 최우선이다.

노조, 임금 넘어서 퇴직연금에도 관심 가져야

노동조합의 역할도 중요하다. 임금협상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퇴직연금을 미래의 임금이자 복지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퇴직연금 수익률 1%p 차이는 장기적으로 수천만원, 때로는 억원 단위의 격차를 만든다. 투자교육 강화, 디폴트옵션 개선, 운용성과 공개, 가입자 참여 확대, 규약 개정 권고 등 지금 당장 실천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을지문덕의 시는 단순한 전쟁의 기록이 아니다. “만족할 줄 알고 멈추라”는 경고이자 “무관심과 탐욕 모두를 경계하라”는 교훈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수대첩 같은 극적인 승리가 아니다. 탐욕의 강과 무관심의 강을 모두 건너는 지혜다.

7손자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그러나 퇴직연금과 노후투자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지기지피(知己知彼). 자신의 투자 성향을 알고 시장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노후라는 긴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 오늘의 주가보다 중요한 것은 내일의 노후이며, 오늘의 환호보다 소중한 것은 평생의 안정이다.

이영하

연금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