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기술 국제협력 담을 새 그릇이 필요한 이유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제협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으로 규율하는 법적 기반은 아직 충분히 정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우리 과학기술 연구개발 법체계는 ‘과학기술기본법’과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국내 연구개발을 전제로 설계된 구조라는 특징을 가진다. ‘과학기술기본’은 국가 차원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기본법으로서 과학기술 국제협력에 대해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원칙적·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 ‘국가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이공계지원 특별법’,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 등 다른 개별 법률에서도 과학기술 국제협력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지만 각 분야의 특수성을 반영한 단편적 규정일 뿐이다. 또한 연구개발 사업의 공모, 선정, 협약, 평가 등 전 과정을 체계화하는 데 기여한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역시 과학기술 국제협력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한 별도의 규율체계를 포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범부처· 범분야적으로 작동하는 과학기술 국제협력이라는 영역을 체계적으로 규율하는 체계는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국제협력 시대, 국내법 여전히 내향적
국제공동연구에서는 복수 국가의 법체계와 절차가 동시에 작동한다. 또한 국제협력은 외교, 안보, 산업정책과 긴밀히 연결되는 영역인 만큼 이를 보다 종합적으로 지원·조정할 수 있는 기반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정부는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국제공동연구 매뉴얼’을 발간하고, 협력 유형을 일반형, 공동기관형, 별도과제형 (Joint Call)으로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2025년 개정본에서는 영문 계약서 가이드와 체크리스트를 추가하는 등 연구자 편의 제고를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러한 매뉴얼은 행정지침의 성격을 가지는 만큼, 연구비 집행, 성과물 귀속, 책임 분담 등 주요 쟁점에 대해 일관된 기준으로 작동하기에는 일정한 제약이 따른다.
결국 국제협력 관련 규정과 지침을 포괄하고, 국제공동연구 매뉴얼 등에서 축적된 기준을 바탕으로 기본원칙을 보다 명확히 정립해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행 ‘과학기술기본법’ 또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 등에 과학기술 국제협력 관련 규정을 추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각 법률의 목적 및 취지, 적용 범위, 규율 대상과 다른 규정이 혼재함에 따라 법체계상 위계와 상호 우선 적용 관계가 모호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기술 국제협력 관련 규정은 단일 법률 내 상호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설계되어야지만 수범자인 연구자 입장에서 그 해석이 수월하고 예측이 가능하므로 더욱 실효적일 것이다. 과학기술 국제협력에 관한 기본 원칙, 전 부처를 아우르는 추진체계, 국제 공동연구 맞춤형 R&D 제도, 연구안보 체계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법률이 필요하다.
독립적 법체계 구축 시급하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며 기술의 자립과 공급망 안정성 확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환경에서, 단일 국가의 역량만으로는 첨단기술 개발과 표준 선점, 인재 확보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국제협력은 더 이상 주변적 요소가 아니다. 과학기술 국제협력이 국가 연구개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은 지금, 이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고 전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체계적으로 정비해 나갈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