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신뢰 무너지면 재정도 흔들린다

2026-06-18 13:00:02 게재

지난 3년간 세계 각국은 저성장과 전쟁,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전환이라는 삼중과제 앞에서 새로운 경쟁력 원천을 찾아왔다. 과학기술 투자 확대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강화와 같은 단골 해답에 더해 최근에는 사회혁신 특히, 청렴과 신뢰에 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9년 재정점검 보고서에서 부패 수준이 낮은 정부가 높은 정부보다 국내총생산(GDP)의 약 4%에 해당하는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글로벌 반부패·청렴 포럼이 청렴이 윤리규범일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자산임을 제시했다.

반복되는 공공부문 비위와 신뢰의 위기

최근 우리 사회는 이 문제가 증폭될 만한 사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올해 지방선거에서의 투표용지 부족 사고를 일으켜 국민의 분노를 유발했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행정조차 의심받는다면 공공부문 전반의 정책 집행력은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앞서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내부정보 이용 부동산 투기 사건은 공공기관 윤리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촉발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역시 공정의 가치를 훼손한 대표적 사례로 기억된다. 국민권익위원회의 2023년 12월 공직유관단체 채용실태 전수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825개 기관 중 454개 기관에서 총 867건의 채용 공정성 위반이 적발됐다. 공공기관 채용이 여전히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공기관의 책임성 문제는 채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부 에너지 공기업은 적자와 경영 부실 논란 속에서도 성과급을 지급해서 비판받았다. 경영성과와 무관한 보상 관행은 공공부문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재정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 이외에도 외유성 해외 출장,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과도한 복지 지원과 같은 공공기관의 도덕적해이는 정부에 대한 불신감은 물론 반감까지 유발할 수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25년 국가청렴도(CPI)에서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63점, 세계 182개국 중 31위를 기록했다. 국민권익위가 인용한 한국행정학회의 분석에 따르면 청렴도 점수가 1점 오를 때 1인당 GDP는 평균 1.53% 증가한다. 청렴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경제성과와 연결된 현실적 지표라는 뜻이다.

AI 시대, 더 강력한 청렴 시스템 필요

이제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먼저 청렴과 반부패를 실천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공공기관 자체의 노력이 더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기관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직접 비위 척결과 제도 개선의 결과를 설명하고 불편한 문제도 감추지 않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조직의 관행을 점검하는 역멘토링도 필요하다. 아울러 부서장 평가에 청렴 체감도와 내부통제 성과를 연동해 책임 구조를 분명히 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행정시스템 전반에 AI 기반 내부통제와 상시 감사 체계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경영 및 사업관리 시스템에 규칙 기반 작동과 예방, 상시 모니터링 감시 등의 AI 기능을 이식하면 사업관리 부실, 내부 정보 유출, 이상 징후를 신속하게 포착하고 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다. 기술을 인간의 허점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더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청렴은 공공기관의 선택 과제가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세금을 효율적으로 쓰고, 정책 신뢰를 높임으로써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렴은 국가와 공공조직이 지속적으로 쌓아 가야 할 가장 확실한 자산이다.

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