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50 여수 안도 상산둘레길

2026-06-19 13:00:09 게재

장보고 대사 흔적 남아 역사·풍경을 걷다

옛부터 국제 해상로의 중간 기착지였던 여수의 섬 안도에는 내륙으로 쑥 들어간 ‘S’자 모양의 작은 바다가 있다. 이 내해를 ‘두멍안’이라 부른다.

두멍이란 둠벙, 즉 작은 저수지를 뜻한다. 마을 안에 있는 바다가 마치 물을 가두어 놓은 둠벙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멍안은 높은 데서 보면 영락없는 한반도 모양이다. 그래서 안도는 한반도를 품에 안은 섬이라 불리기도 한다.

금오도 장지 마을과 다리로 연결된 작은 섬 안도는 큰 섬 금오도보다 어선이 많다. 금오도가 농업의 섬이라면 안도는 어업의 섬이다. 섬이 기러기 모양과 닮아 기러기 ‘안(雁)’자를 써 안호라 하다가 1910년, 안도(雁島)로 개칭되었다.

기러기를 닮아 기러기 ‘안(雁)’자를 쓴 안도 둘레길을 걷다보면 장보고시대와 일제시대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의 역사와 풍경에 젖어든다. 사진 섬연구소 제공

안도는 금오도와 연도(소리도) 사이에 있는 섬이라 해서 안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은 금오도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안도가 금오도보다 더 번성했다. 천혜의 대피항인 두멍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항하기 좋은 두멍안이 있어 안도는 일제 강점기에 어업 전진기지가 됐다. 일제는 안도에 일본인들을 이주시켜 어업권을 장악했고, 어업조합과 순사 주재소 등을 두고 수산물을 수탈해갔다. 해방 후에도 안도는 어업이 주된 산업으로 이어졌다.

안도는 현대사의 비극인 양민학살의 현장이기도 하다. 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의 와중에 진압군 김종원 대위가 연락선 동일호를 타고 함포 사격을 하며 이야포로 상륙했다.

일제 패망 후 도주한 일본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안도 앞바다 정치망 어장을 안도마을 공동체에 빼앗긴 이웃 섬 주민의 무고로 진압군이 들어왔던 것이다. 진압군은 주민들을 안도국민학교에 집결시킨 후 인민군을 찾아내라며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고 그 중 11명을 처형했다. 죄없는 민간인들이었다.

한국전쟁 때는 350여명의 피난민이 배를 타고 이야포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군 제트기 4대가 나타나 피난선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그 폭격으로 피난민 150여명이 현장에서 몰살당했다.

안도는 고대부터 인근의 거문도 소리도 등과 함께 국제 해상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 일본 헤이안 시대 승려 엔닌(794- 864) 선사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도 안도의 이름이 등장한다.

838년부터 847년 9월까지 10년 간 당나라 유학 생활을 했던 엔닌 선사는 장보고 청해진 대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당시에는 왜인들의 당나라 입국이 금지됐었기에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엔닌은 장보고가 당나라 적산에 세운 절 법화원을 피신처 삼아 불법을 공부할 수 있었다.

엔닌은 귀국 길에 고이도와 거차도를 거처 안도에 기항했고 그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안도의 최고 보물은 당산이다. 안도 당산에는 근래까지도 신당인 당집이 있었는데 신당에 모시던 신위는 안도에 처음 들어와 살았던 입도조 정씨 내외의 위패였다.

섬의 개척민인 마을의 수호신이 됐다. 입도조에게 제사를 모시던 안도 마을 당제는 해마다 정월 보름에 열렸었지만 지금은 맥이 끊겼다. 상록수 거목이 울창한 당산 숲은 지금도 잘 보존되어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안도에는 백섬백길 23코스 상산둘레길이 있다. 5.3㎞의 둘레길은 안도의 주산인 상산 둘레를 한바퀴 도는 길이다. 안도선착장에서 시작하여 이야포해수욕장과 상산 숲길을 거쳐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상산으로 오르는 초입부 경사면을 제외하면 내내 평탄한 길이다.

금오도 비렁길과 함께 걸으면 더욱 좋은 길이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