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새 역사 쓴 증시, 그러나 리스크도 있다
한·일 증시가 18일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했고, 일본 증시에서는 낸드플래시 전문 기업 키옥시아가 51조엔으로 도요타자동차(45조엔)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미국 월가의 빅테크와 새로운 주도주 키워드인 ‘망고스(MANGOS, 메타·앤트로픽·엔비디아·구글·오픈AI·스페이스X)’가 쏘아 올린 AI 인프라 투자가 동아시아 반도체 벨트의 폭발적 랠리를 견인한 결과다.
이번 랠리의 본질은 실체 있는 수요다. 거대언어모델(LLM) 가동을 위해 빅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집행하면서 AI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을 쥐고 있는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급부상했다.
SK하이닉스(6.51% 상승, 종가 268만5000원)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며 주가 260만원선을 뚫었고, 삼성전자(4.62% 상승, 종가 36만2500원) 역시 차세대 제품의 엔비디아 테스트 통과 임박 신호와 함께 지수상승을 주도했다. 코스피는 ‘시가총액 가중 방식’ 지수이므로 이날 코스피 상승분(199.60p) 중 150포인트 이상이 두 기업의 시가총액 증가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AI가 밀어올린 반도체 슈퍼랠리의 극치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고성능 솔리드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수요가 폭증하자 일본 키옥시아가 낸드 슈퍼사이클의 최대 수혜주로 등극했다. 여기에 오픈AI 지분 13% 확보를 앞둔 소프트뱅크그룹이 가세하며 16일 일본 증시에서 1위와 3위에 각각 올랐다. 키옥시아와 소프트뱅크그룹의 폭발적인 약진은 글로벌 인공지능(AI)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려한 축제의 끝은 언제나 냉혹했다. AI 반도체 패러다임이 만들어낸 역사적인 9000선 돌파라는 화려한 모습 뒤에는 극단적인 쏠림과 높은 변동성이라는 요소가 뚜렷하게 공존한다. ‘반도체 슈퍼랠리’의 극치를 보여준 사상 최고치 경신이라는 숫자 뒤에는 세가지 치명적인 구조적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첫째, 신용잔고 급증에 따른 담보 부족과 반대매매 폭탄이다. 개인투자자의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사상 최고치인 28조5000억원에 육박하면서 증시의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 주가 급등기에 빚을 내어 막차를 탄 개인물량이 상당수다. 향후 거시경제 충격이나 차익실현 매물로 주가가 단 10~15%만 조정받아도 담보비율을 유지하지 못하는 담보 부족 계좌가 속출하게 된다. 이는 개장과 동시에 기계적으로 물량을 던지는 증권사의 반대매매 폭탄으로 이어져 지수급락을 부추기는 악순환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하반기 캐펙스(CAPEX, 설비투자) 집행의 불확실성이다. 미국 빅테크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의 올 하반기 설비투자 전망치는 전년 대비 40% 이상 증액된 사상 최대 규모로 예고되어 있다. 한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일본의 낸드플래시 단가 상승은 이들 주가 상승을 정당화하는 핵심 근거다. 하지만 시장의 의문은 ‘이 막대한 투자가 실제로 끝까지 집행될 것인가’에 모인다. AI 서비스의 실질적인 수익화(ROI) 증명이 지연되거나 주요국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빅테크 기업들은 CAPEX 집행 속도를 조절하거나 투자를 동결할 수 있다. 설비 투자가 정점에 이른 상황에서 수요가 조금이라도 둔화되면 메모리 단가는 순식간에 폭락세로 돌아선다.
셋째, 시장 지표인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VKOSPI) 77선 돌파가 예고하는 극단적 변동성과 단기 조정 시나리오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VKOSPI가 77.90까지 치솟은 점은 매우 이례적이다. 통상 지수가 폭등하면 변동성지수는 하락하는 것이 정상이나 현재는 지수와 공포지수가 동반 급등하는 기형적 과열 상태다.
이는 코스피 9000선 돌파가 시장 전반의 온기가 아닌 시총 상위주 몇 개에 기댄 ‘반쪽짜리 강세장’이기 때문이다. 등락비율(ADR)이 72.56%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VKOSPI 77선 돌파는 기관과 외국인이 하방 위험을 방어하기 위해 풋옵션 매수를 대거 늘렸음을 뜻한다. 시장이 하락세로 반전할 경우 투매를 유발하는 극단적인 롤러코스터 장세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경고 신호다.
AI 혁신 수혜 누리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
AI가 지핀 혁신의 불꽃은 분명 자본시장을 바꿨다. 하지만 특정 섹터에만 의존하는 증시는 모래성이다. 자본의 환호에 계속 취하기보다 증시 과열 데이터가 가리키는 쏠림의 그늘을 먼저 대비해야 한다. 냉철한 리스크 관리만이 이 AI 및 반도체 투자의 마지막 승패를 가를 것이다.
안찬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