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재첩이 보낸 경고, 부처간 칸막이에 묻혔다
염수 역류해도 긴급 환경유량 조정 책임주체 불분명 … 하천·해양 조사체계 제각각, 지천자료도 미흡해
“섬진강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재첩도 잡고 그랬어요. 요샌 재첩이 많이 줄었죠. 자연자본이 점점 중요해지는 데 안타깝습니다.”
17일 섬진강 일대에서 만난 박정수 섬진강유역환경협의회 상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자본은 토양·물·생물·대기 등 자연이 제공하는 자원과 생태계 서비스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개념이다.
국내에 몇 안 남은 자연하구인 섬진강 하구에서 재첩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패류학회지(현 한국연체동물학회지)의 논문 ‘섬진강 하류 및 하구역 염분변동 특성’에 따르면, 국내 재첩 생산량의 약 89%가 섬진강을 중심으로 한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등지에서 나온다. 하동수협 통계에 따르면 하동 지역 재첩 생산량은 2002년 633톤에서 2016년 202톤으로 급감했다. 또한 수협중앙회 수산경제연구원의 ‘내수면어업 실태조사 및 지원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내수면 재첩류 생산량은 2020년 230톤에서 2022년 506톤으로 반등했다가 2024년 328톤으로 다시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수산자원 감소만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핵심종(Keystone species)인 재첩에게 나타나는 변화를 통해 우리가 지금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예측해 대응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종은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영향력이 큰 종이다. 하구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형적 특성으로 염분 농도와 서식 환경에 따라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가 함께 관찰되는 등 독특하고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
19일 박찬호 전남대학교 수산과학연구소 박사는 “섬진강에서 재첩이 줄어드는 현상은 단순한 자원 고갈이 아니라 하구 염분 구조 자체가 흔들린다는 경고 신호”라며 “재첩만 바라보고 수량이나 염도를 조각조각 손볼 게 아니라 하구 전체를 하나의 생태계로 다루는 통합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수산과학회지의 논문 ‘섬진강 하구 및 광양만의 동물플랑크톤 군집 구조 및 요각류와 환경요인간 상관관계 분석’에 따르면, 섬진강에서 광양만까지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정도에 따라 사는 플랑크톤 종류가 달라졌다.
곽인실 전남대 교수팀은 2022년 섬진강 하구에서 광양만에 이르는 6개 지점의 동물플랑크톤을 조사한 결과, 하구 상류(기수역)와 하류(해수역)의 군집 구조가 뚜렷이 달랐으며, 이 차이를 이끄는 핵심 변수는 다름 아닌 염분이었다고 밝혔다. 재첩의 서식 적정 염분대인 기수역이 교란되면, 먹이사슬의 기초를 이루는 플랑크톤 군집부터 연쇄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재첩 감소는 그 최종 결과일 뿐이다.
◆하천–하구–연안 통합관리 필요해 = 섬진강은 자연 그대로의 기수역이 잘 발달해 생태적 가치가 높다. 하굿둑으로 강과 바다의 연결이 끊긴 낙동강이나 금강과 달리, 섬진강은 민물(담수)에서 민물과 바닷물(해수)이 섞이는 기수 구간을 바닷물로 이어지는 전이대가 아직 살아있는 곳이다. 그만큼 보전 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를 관리하는 체계가 각 부처 혹은 지방정부 별로 쪼개져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법적 관리 체제도 미흡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수 있다.
박 박사는 “기후에너지환경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그리고 전라남도·경상남도·하동군·광양시까지 제각각 자기 관할 안에서만 움직이다 보니 섬진강 하구를 하나의 생태계로 다루는 법적 근거 자체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기후변화로 가뭄과 집중폭우가 잦아지면서 염수가 상류로 파고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데 긴급하게 환경유량을 조정할 권한이 어느 부처에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골든타임에 작동하는 의사결정 체계가 없다는 지적이다. 환경유량은 하천에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 흐름량이다.
‘섬진강 하류 및 하구역 염분변동 특성’에 따르면 재첩 서식지의 염분 농도를 적정 수준(5~15 psu)으로 유지하려면 섬진강 담수 유량이 40cms(초당 40세제곱미터) 이상 흘러야 한다. 민물이 충분히 흘러야 바닷물이 상류로 치고 올라오는 현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뭄철 실측 유량은 11~13 cms에 그쳤다. 재첩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양의 1/3 수준이다. 기후변화로 가뭄이 잦아질수록 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한국환경연구원의 ‘기후위기 대응 하구·연안 통합환경정보체계 시범 구축’ 보고서에서도 “△해양환경관리법 △갯벌복원법 △해양생태계보전법 등 관련 법령이 존재하지만 각 법률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목적과 적용 범위가 달라 하구·연안 통합관리를 뒷받침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일부 지역이 특별관리해역 또는 환경보전해역으로 지정돼 있어도 실질적인 통합관리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는 또 “기후변화로 수문환경과 수질이 불안정해지면서, 하천–하구–연안을 하나의 유기적 수계로 통합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하구·연안은 유역–하천–해양으로 연계된 복합 공간이지만 부처 간 관리체계가 분절되어 통합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측정 방식이나 빈도 등 달라, 활용 한계 = 분산된 환경 자료의 통합과 효율적인 활용도 고질적인 숙제다. 박 박사는 “하천 조사와 해양 조사가 좌표계와 조사 주기가 달라서 두 자료를 이어 붙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섬진강 하구 및 광양만의 동물플랑크톤 군집 구조 및 요각류와 환경요인간 상관관계 분석’에서도 섬진강-광양만 연속 구간을 잇는 생태 연구 자체가 아직 부족하다며 장기 조사 필요성을 촉구했다.
박 박사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섬진강 본류로 합류하는 지천과 소하천들의 유량·수질·오염원 자료가 미흡하다는 점”이라며 “유역 전체의 영양염 부하와 퇴적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필수인 지천 단위 자료가 비어 있으니 하구 생태 변화의 원인 추적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있는 자료도 기관마다 측정 방식과 빈도가 달라서 시계열적으로 이어 붙이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기후위기 대응 하구·연안 통합환경정보체계 시범 구축’에서는 “△제1차 물환경관리기본계획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등 법정계획에 통합모니터링체계 구축 등의 사업이 반영됐지만 이를 담보할 법정 실행계획 수립 근거 등 제도적 수단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행은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4월 21일 박수현 의원이 ‘하구 복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후부장관이 해양수산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해 10년 단위 국가하구종합계획을 수립하고 2년마다 이행상황을 평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부처 간 분절된 하구 관리를 통합·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국가하구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하지만 발의만 됐을 뿐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16일 기후부 관계자는 “이전에도 분절된 하구 관리를 통합 조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관련 법들도 발의됐지만 폐기된 바 있다”며 “이번 법안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된 부처들이 많다 보니 각 부처별로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치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20대 국회 때에도 ‘하구의 복원 및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특별법안’이 논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