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원의 일본 톺아보기
한국의 노사관계, 일본의 노사관계
세계가 인공지능(AI) 열풍에 휩싸여 있다. AI의 수혜주로 불리는 ‘삼전닉스’의 수직 상승 덕분에 코스피도 얼마 전까지는 꿈이었던 9000대를 손쉽게 돌파했다. 이에 힘입어 나라 전체의 실질 GDP도 전기 대비 1.8% 성장했다.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반도체부문을 중심으로 파업에 돌입할지 모른다고 온 나라가 걱정하던 게 딱 한달 전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중재로 노사가 타협해 한 시름 덜었지만 이번엔 반도체부문의 성과급이 1인당 6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온 사회가 몸살을 앓았다. 한번 앓고 만 것으로 치부하지 않으려면 그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문제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는 짚어두어야 한다.
배고픔보다 배아픔이 더 하다고, 파업을 볼모로 엄청난 보상을 따낸 삼성 노조에게 많은 사람들이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다. 경제를 후퇴시키고 자본주의를 파괴한다고 노조 혐오를 숨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 짝을 이루는 많은 관계가 그러하듯 노사관계도 상대편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노동조합이 못마땅하다면 사용자도 못마땅하게 여겨야 도리 아닐까.
상대편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삼성을 세운 이병철 회장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창업 이념으로 내걸었다. 이윤만을 추구하지는 않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이 회장이 생전에 교류하며 배우기도 했던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고노스케 또한 “기업은 사회의 공기(公器)”라며 이윤 추구를 넘어서는 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노사관계에 관해서는 생각이 많이 달랐다. 패전 직후 노조가 결성되었을 때 마쓰시타는 스스로 창립대회에 참석해 “노조의 탄생은 민주주의에 의거한 새 일본 건설에서 환영할 일”이라고 축하연설을 했다. 반면 이병철 회장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노조는 안된다”는 신념으로 일관했고 이는 2020년에 삼성이 ‘무노조경영 폐기’를 선언할 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사측이 이런 ‘꼰대’ 경영을 해 온 게 사실이라면 이를 참지 못한 젊은 엔지니어들의 반항에 부딪친 것은 자업자득이다. 또한 성과급이 그간 사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어 왔다면 그 기준의 투명성을 요구한 것은 정당하다. 나아가 그간 기업과 국가의 지도자들이 종업원과 국민의 출세와 처우는 오로지 실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해 온 것이 틀림이 없다면 지금 이 순간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이 실력만큼의 처우를 실력으로 쟁취하겠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설명으로 끝날 일이라면 온 사회가 몸살까지는 안 앓았을 터이다. 더 생각해 봐야 할 게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이런 현상이나 행태가 지속가능할지에 관한 의문일 것이다.
연대의 모색과 보상의 추구
파나소닉의 예로 돌아가 보자. 이 기업그룹의 경우 모회사 자회사 뿐만 아니라 거래관계가 있는 부품회사나 판매회사의 노조를 포함해 119개 노조 약 9만명이 ‘파나소닉그룹 노동조합 연합회(PGU)’를 구성하고 있다. PGU의 운동이념은 “좋은 삶, 좋은 회사, 좋은 사회를 함께 만든다”이다. 기본적으로 기업별 조합에 해당하는 단체에서 ‘좋은 사회’를 내세우고 있다는 게 눈길을 끈다. 실제로도 ‘지역 과제의 해결’ 등에 신경을 쓴다. 자기의 직접적인 이익을 넘어서는 이런 활동을 ‘연대’라 한다면 PGU는 나름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의 경우는 어떤가.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전기 삼성전자 삼성화재 노조가 결집한 ‘삼성그룹 초기업 노동조합(SGUU)’은 그 강령에서 “계열사의 이윤 창출에 기여하는 한편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고 주창한다. 이번 투쟁을 주도한 SGUU의 ‘삼성전자 지부(SELU)’는 그 규약에서 ‘조합원의 임금, 근로조건의 유지 및 개선’ 등을 주된 활동으로 규정한다. 연대에 관한 언급은 없다.
노동조합이 ‘합당한 보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터인즉, 여기에 연대를 더하고 마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중요하다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왜 그런가?
노동조합도 사회적 책임이 있다거나, 약자에게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당위론도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유지 발전을 위해서”라는 얼핏 보아 실용적인 이유 또한 중요하다. 노사관계의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이며 그 배경엔 공동체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깔려 있다.
실제 ‘합당한 보상’의 중점적 추구는 이미 스스로의 존립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부문(DS) 뿐만 아니라 완제품부문(DX) 등을 포괄하는 종합전자회사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투쟁에서 SELU는 주로 DS의 ‘합당한 보상’을 추구했고 이에 ‘찬밥’ 신세가 된 DX 조합원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SELU는 순식간에 과반수 조합의 지위를 상실했다. 이에 SELU는 향휴 교섭단위를 아예 분리해 DS만의 요구를 회사와 교섭하겠다 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같은 DS에 속한다고 해도 엔지니어와 생산직이 동등한 비율의 성과급을 받는 것은 과연 합당한가? 아마도 상당 수 엔지니어들은 자기들의 공헌도가 훨씬 크다고 여길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회사와의 교섭상 ‘머릿수’가 필요해 생산직과 함께 할지 모르지만 양자의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순간 엔지니어만을 분리해 따로 교섭하겠다고 할지 누가 알겠는가. 이처럼 자기만의 보상을 추구할 경우 조합 자체가 쪼그라들 위험은 매우 크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해야
여기까지 얘기가 진행되면 SGUU는 아직 초창기라서 그렇지 성숙해지면 달라질 것이라거나,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소속된 노조는 보다 폭넓게 연대하고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실제 산업별 조합 차원으로 눈을 옮기면 한국노총도 민주노총도 ‘연대기금’을 설립해 비정규직 지원 등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고 이는 일본을 앞선다. 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기업 차원으로 얘기를 되돌리면 그림이 달라진다.
다시 파나소닉 예를 보자. PGU가 부품회사나 판매회사의 노조까지 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지적한대로이다. PGU는 임금인상 투쟁에서도 서로 발을 맞춘다. 대기업 노조가 투쟁을 선도하지만 부품・판매회사 노조도 가능한 한 대기업과의 격차를 시정하게끔 응원하고 또 필요할 경우는 격차가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대기업 노조의 요구를 자제하기도 한다. 그리고 부품・판매회사가 실시한 임금인상분을 얹어서 대기업이 납품・판매 단가를 개정하도록 노조 차원에서 지원한다. 단지 ‘상생’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노조 스스로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파나소닉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많은 기업그룹에서 볼 수 있다. 이를 약자를 위한 활동이라고 미화할 필요까지는 없다. 저변을 확보해야 대기업 노조 자신도 중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을 한국의 기업별 조합은 어느 정도 하고 있을까?
친구의 아들이 몇 년 전에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영국의 반도체설계회사 ARM으로 전직했다. 이번에 삼성이 거액의 성과급을 받는 게 배아플 수도 있겠지만 재직시 자기가 몸담았던 파운드리사업부는 지금도 빛 안드는 음지에 속한다면서 외국에서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다. 이와 달리 일본 젊은이들은 안정 지향이 강해 도통 외국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개인의 활력에서 일본은 한국을 따라오지 못한다.
하지만 노사관계는 집단을 전제로 한다. 노사간에 적절한 룰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기업 뿐만 아니라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게 노사관계의 존재 이유다. 일본의 노사관계는 윤리의 차원을 떠나 생존의 차원에서 공동체를 의식하면서 행동한다. 한편 한국의 노사관계는 ‘합당한 보상’에 지나치게 중점을 둔다. 그러면 공동체는 어떻게 되나?
공공정책연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