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AI에 전력망 ‘비상’…한국 총력전
최대전력수요 98.8GW 전망 … 유럽, 폭염으로 전력공급 차질
올여름 우리나라 전력당국이 역대 최고 수준의 전력수요에 대비해 비상 대응체제에 돌입한다. 폭염에 따른 냉방수요 증가와 산업용 전력소비 확대로 전력수급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으로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면서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각국 에너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후부, 비상대응체계 운영 =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9일부터 9월 18일까지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기간으로 지정하고 비상 대응체계를 운영한다고 25일 밝혔다. 정부는 올해 최대 전력수요를 94.1~98.8GW로 전망하고 공급능력 107GW를 확보했다. 최대 수요가 발생하더라도 예비력은 8.2GW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폭우와 태풍, 발전설비 고장 등에 대비해 약 8.8GW 규모의 추가 예비자원을 확보하고 발전설비와 송배전 설비에 대한 사전 특별점검을 실시한다. 노후 설비를 교체하고 취약설비 점검을 강화한다.
국민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7~8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구간을 완화해 냉방비 부담을 줄이고,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해 전기요금 감면 한도를 월 최대 2만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전기요금을 연체하더라도 여름철에는 전기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미국 ‘용량 주의보’ 신규 도입 = 이번 대책은 세계 각국이 겪고 있는 전력수급 불안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에서는 단순한 폭염보다 AI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기관인 PJM은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증가로 기존 비상 대응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과거에는 폭염과 한파가 비상상황의 주요 원인이었지만 이제는 AI 데이터센터의 24시간 대규모 전력소비만으로도 공급 부족 가능성이 커졌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PJM은 ‘용량 주의보’를 새롭게 도입해 발전용량 부족 가능성을 사전에 경고하고, 발전소 정비일정 조정과 전력수입 확대, 예비 발전기 가동 등을 선제적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앞서 미국 에너지부는 12일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남동부 지역에 전력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폭염에 따른 냉방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소 최대출력 운전을 허용하고 일부 환경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PJM 실시간 전력가격은 한때 MWh당 1300달러를 넘어서며 공급 부족 우려를 그대로 반영했다.
◆송전망·계통 안정적 운영까지 동시 요구 = 유럽은 폭염이 발전설비 자체의 출력까지 낮추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강물 수온 상승으로 원전 냉각에 제약이 발생하면서 일부 원전의 출력을 제한하거나 가동을 중단했다. 여기에 고기압 영향으로 풍력발전량까지 감소하면서 전력 공급여력이 크게 줄었다. 부족한 전력을 메우기 위해 가스발전 비중이 확대되면서 전력가격도 급등했다.
독일은 저녁 시간 장중 전력가격이 MWh당 868유로까지 치솟았고, 프랑스 역시 400유로를 웃돌았다. 영국에서는 폭염으로 가스발전소 고장이 늘어나면서 전력망 운영기관이 이례적으로 여름철 공급여유량 경고를 발령하기도 했다.
폭염은 송전망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에서는 고온으로 송전선이 처지는 현상에 대비해 일부 송전용량을 제한했고, 변압기 고장으로 수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전력수급 문제는 단순히 발전소를 많이 건설하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AI 데이터센터와 전기화 확대에 따른 구조적인 전력수요 증가, 폭염과 한파 등 기후변화에 따른 수요 급증, 송전망과 계통운영 안정성 확보가 동시에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