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반도체 호남 투자에 대한 문과적 기우
반도체 호남 투자를 두고 논쟁이 거세다. 호남특혜론에 민주당 전당대회용 투자라는 주장까지 분분하다. 그런데 아시는가. 정치는 득표율을 계산하지만 기업은 이익을 계산한다. 물론 이 둘의 중간지대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X(옛 트위터)에 올린 것처럼 ‘정부의 설득과 회사에 이익이 된다는 CEO의 판단’이 겹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쪽은 지역균형발전을 말하고, 다른 쪽은 정치적 특혜를 의심한다. 그러나 양쪽 모두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오늘날 반도체 산업은 무엇을 기준으로 투자처를 선택하는가. 산업이 바뀌면 판단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논쟁은 여전히 ‘공장 하나 더 짓는 대형 제조업’ 정도로 이해하던 과거의 언어로 인공지능(AI) 시대의 반도체를 설명하려 한다.
정치 아닌 산업의 시선으로 호남을 보라
AI는 반도체 산업의 문법 자체를 바꾸고 있다. 미세공정 경쟁만이 전부였던 시대는 지나갔다. 용수와 용지, 전력망 등 인프라, 공급망 안정성이 기업의 투자 판단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반도체는 제조업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에너지 산업이고 물 산업이며 국가 인프라 산업이다.
변화는 전력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AI 반도체와 초대형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순간적인 전압 변동만 생겨도 생산라인이 멈추고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신규 투자와 전력망 확충을 늘 동시에 검토하는 이유다. 이제 반도체 경쟁은 누가 더 큰 공장을 짓느냐보다 누가 더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하느냐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호남을 바라보는 시선도 정치가 아니라 산업으로 옮겨볼 필요가 있다. 호남은 한빛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발전설비와 전국 최대 규모의 태양광, 앞으로 확대될 해상풍력 등 풍부한 전력 생산 기반을 갖춘 지역이다. 반도체가 최대 수출산업인 우리나라에서 현실적 수출장벽이 될 수도 있는 RE100(재생에너지 100%)을 달성할 최적지이기도 하다.
정부가 서해안 초고압직류송전(HVDC)망을 구축하고 에너지저장장치와 계통 안정화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해저 케이블을 통해 충청권과 수도권으로 보내는 방안이 현실화되고 있다. 반도체를 둘러싼 호남 논쟁이 ‘문과적 기우’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의 조건은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논쟁의 전제들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의 무게중심 역시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첨단 팹(Fab) 유치가 반도체 산업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기능을 한곳에 모으기보다 연구개발과 생산, 패키징, 물류를 기능별로 연결하는 것이 세계 공급망의 흐름이다. 미국이 애리조나·텍사스·오하이오·뉴욕으로, 일본이 구마모토·홋카이도·히로시마로 거점을 분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오늘날 클러스터는 ‘집적’이 아니라 ‘연결’이다.
호남 투자가 정답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호남은 안된다”는 막연한 주장 역시 정치적이다. 정치는 지역을 먼저 볼지 모르지만 기업은 산업을 먼저 보고 지역을 고른다. 지난해 오픈AI가 SK와 합작해 해남에 데이터센터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아마존이 SK와 손잡고 울산에 데이터센터를 착공했을 때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정치권의 호남 반도체 투자 불가론이 ‘정치적’으로 보이는 또다른 이유다.
산업이 요구하는 조건 갖추고 있느냐가 기준
정치는 본질적으로 가치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첨단산업을 논할 때만큼은 정치의 언어보다 공학의 언어를 앞세워야 한다. 산업은 정치의 속도가 아닌 기술의 속도로 움직인다. AI가 산업지형을 바꾸고 전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며 공급망이 국가 전략이 된 시대다. 산업정책은 당연히 그 변화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반도체는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전력망을 이해하고 용수를 계산할 뿐이다. 그러므로 호남이냐 타 지역이냐 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그곳이 산업이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 질문 앞에서는 정치도, 지역감정도, 선입견도 한걸음 물러서야 한다. 그리고 너무 걱정들 마시라. AI를 앞세운 첨단산업은 수십, 수백조원이 움직이는 21세기 자본집약적 산업의 총아다. 표심이 아니라 공학을 따라간다. 무엇보다 이 산업과 기업들은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이들은 돈을 가장 적게 쓰면서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말 그대로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형 자치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