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종전협상과 이스라엘의 선택
‘종전 기준’ 놓고 미국과 시각차 뚜렷 … 국내정치·경제·외교적 과제 산적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MOU)가 공개되자 이스라엘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네타냐후 총리만의 반응이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스라엘 국민의 92%가 이번 MOU를 ‘이란의 승리’로 해석하며 전쟁 지속을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은 물론 연립정부에 참여한 강경 극우정당의 비판도 거세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바나나 공화국’이 아니며, ‘나쁜 협상’의 결과에 구속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레바논 남부에서는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위협 관리’, 이스라엘은 ‘제거’
문제의 본질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종전의 기준’이 다르다는 데 있다. 미국은 조속한 종전, 핵협상 별도 추진, 중동 안정, 중국 견제라는 글로벌 전략에 무게를 둔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능력 제거, 미사일 전력 제한, 대리세력 위협 해소라는 직접적 안보 목표에 집중한다. 결국 미국은 ‘위협의 관리’를 선택했고, 이스라엘은 끝까지 ‘위협의 제거’를 원했다. 이번 MOU를 둘러싼 갈등은 바로 이 전략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전쟁 초기 미국과 이스라엘은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포함한 이란 핵심 지도자들을 대거 제거하면 반체제 시위가 확산되고, 나아가 체제전환까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란체제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5000년 역사 속에서 축적된 위기관리 능력과 복원력은 예상보다 강했다.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 체제전복을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다.
이란의 핵능력 제거도 불완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은 절대로 핵무기를 갖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강조하며 이를 최대 성과로 내세운다. 실제로 MOU 제8조에는 “이란은 결코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이란이 핵비확산조약(NPT) 회원국으로서 이미 부담하고 있는 의무다.
2015년 이란핵협정(JCPOA) 서문에도 “이란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핵무기를 추구하거나 개발하거나 획득하지 않겠다”고 명시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그 협정이 이란의 핵개발을 막지 못한다며 2018년 탈퇴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핵심 쟁점이 모두 후속협상으로 미뤄졌다는 점이다. 이란이 보유한 60% 고농축 우라늄 441kg의 처리 문제, 우라늄 농축 권리, 핵시설 검증 방식 등 ‘뜨거운 감자’는 앞으로 60일간의 후속협상 테이블에서 다뤄진다. 종전은 선언됐지만 핵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란의 군사력 약화도 이스라엘이 보기에는 미흡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합동작전으로 2만개 이상의 표적을 파괴했다고 밝혔지만,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능력은 상당 부분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쟁에서 5중 방어망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방공망도 여러 차례 뚫렸다. 이란의 극초음속 미사일 능력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이란이 미국·이스라엘과의 군사력 격차를 단숨에 뒤집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미사일 문제는 미-이란 후속협상 의제에도 포함되지도 않았다.
대리세력 문제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악몽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약 2000km 떨어져 있어 지상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란은 그동안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반군과 이라크·시리아 내 친이란 민병대를 통해 이스라엘을 압박해 왔다. 특히 헤즈볼라는 지금도 이스라엘 북부를 위협해 주민들이 장기간 피난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MOU 발효 이후에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상호 휴전 위반을 이유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술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전략에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선 앞둔 국내 상황은 더욱 혼란
이스라엘 국내정치의 혼란도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전쟁실패론을 앞세워 네타냐후 총리의 지도력에 도전하는 세력이 커지고 있다. 10월 말 총선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부패 혐의와 관련된 네타냐후 총리의 세 건 재판도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유죄판결이 내려질 경우 그의 정치생명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최근 두 거대 야당이 합당하면서 정권교체 가능성도 거론된다. 사면초가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안보 위기와 연결해 돌파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안보불안 계속될 가능성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첫째, 안보불안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규모 공습으로 이란의 핵시설과 미사일 시설이 상당 부분 파괴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지하 깊숙이 있는 핵심시설은 입구 등 일부만 손상됐을 뿐 내부는 건재하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앞으로 60일간의 후속협상에서 미국이 어느 정도의 검증 가능한 성과를 끌어내느냐가 이스라엘 안보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또한 합의 이행을 감시할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 검증체계가 제대로 작동할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이스라엘은 방공체계도 새롭게 점검해야 한다. 이번 전쟁에서는 ‘가성비 전투’라는 말이 등장했다. 저가의 드론을 요격하기 위해 수백만달러짜리 대공미사일을 발사해야 하는 비경제적 전투 방식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반면 이스라엘이 운용 중인 레이저 방어체계 ‘아이언 빔(Iron Beam)’은 1발 발사 비용이 몇 달러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지면 향후 이스라엘 방공체계의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둘째, 경제도 안보와 맞물려 있다. 이스라엘 경제는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과 창의적인 기업문화, 과감한 투자 생태계를 바탕으로 여전히 강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쟁 중에도 경제 전반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 올해 성장률은 전쟁 상황을 감안해 3.8% 수준으로 조정됐지만, 내년에는 5%대 반등도 예상된다. 1인당 소득도 곧 7만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7년 한국과 이스라엘의 1인당 소득은 2만달러 안팎으로 비슷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두 나라의 소득 격차는 두 배 가까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스라엘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안보환경에 달려 있다. 역내 긴장이 장기화되고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면 투자와 무역 금융 기술협력에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첨단기술만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전히 상쇄할 수 없다.
셋째, 이스라엘 외교는 더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선 종전협상을 둘러싸고 파열음을 낸 미국과의 관계를 조속히 복원해야 한다. 가자전쟁과 서안지구 정착촌 문제로 악화된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회복도 시급하다.
전쟁 과정에서 이란의 집중 공격을 받은 걸프 산유국들의 대외정책 변화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특히 가자전쟁 이전까지 진전을 보이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정상화 협상을 다시 궤도에 올릴 수 있을지도 중요한 요소다. 이것이 성사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아브라함협정 확대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그러나 가자전쟁과 이란전쟁이라는 이중 충돌을 겪은 뒤인 만큼 앞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이스라엘의 국가 이미지를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레바논 남부에서 일부 이스라엘 병사들이 예수와 성모 마리아 상에 저지른 종교적 불경 행위는 이스라엘의 대외 이미지를 크게 훼손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네타냐후 총리는 이러한 행위가 종교적 관용과 상호존중이라는 유대인의 가치에 반한다며 관련 병사들에 대한 징계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미 상처받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얼마나 되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도덕적 자산 바탕으로 신뢰 회복해야
이스라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메나헴 베긴 전 총리는 1977년 취임 직후 해상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베트남 난민들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국제관계에서 ‘유대인 방식(The Jewish Way)’을 강조했다.
안보와 경제, 외교가 긴밀히 맞물려 돌아가는 시대에 국가 이미지는 또 하나의 전략자산이다. 인류는 유대인이 과학과 문화, 금융과 사상 등 발전에 기여해 온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 이스라엘이 군사력뿐만 아니라 ‘유대인 방식’이라는 도덕적 자산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더욱 기여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