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51 애도 꽃정원길
소멸해 가던 섬에 꽃 심어 고흥 명소로 부활
고흥의 작은 섬 쑥섬에는 특별한 정원이 있다. 쑥섬은 애도의 한글 이름이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만큼이나 신비로운 정원. 원시림의 숲을 지나 산 정상에 서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공중 정원. 이 정원에서는 사계절 300여 종의 꽃들이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봄에는 램즈이어와 알리움기간티움 작약 차가플록스 숙근양귀비가, 초여름에는 수국과 노랑참나리 보라샐비어 에키네시아 샤이엔스피릿 백합이 연이어 피어난다.
한여름에는 풍접초와 플록스 테디베어 해바라기 삼잎국화 칸나가, 겨울에도 란타나와 핫립세이지 미니 백일홍 공작아스타가 피어난다.
쑥섬 정원은 2021~2022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명물이 됐지만 처음부터 창대했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미미했다. 청년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섬,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지자 산밭은 버려졌다.
야생으로 돌아간 산밭을 다시 개간하고 꽃을 심어 정원으로 만든 것은 정부나 지자체가 아니었다. 국어교사인 김상현과 약사인 고채훈 부부였다. 부부는 전남 1호 민간정원인 쑥섬 정원을 25년 동안이나 묵묵히 만들어온 주인공이다.
정원 덕에 쑥섬은 고흥의 대표적 관광지가 됐다. 섬 살리기를 하겠다며 수십, 수백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은 정부나 지자체 사업들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지원 같은 거 없이 부부의 힘으로 만들어낸 정원은 소멸해 가던 섬을 살려냈다. 이 어찌 기적의 정원이 아니겠는가! 정원이 만들어진 이면에는 애달픈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김상현 선생의 어머니는 지적장애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장 일을 하며 김 선생 4남매를 키워내셨다. 김 선생의 외할아버지 고향이 쑥섬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외손자에게 자신의 딸을 잘 돌봐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유언을 지키기 위해 김 선생은 대학과 군 생활을 제외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내내 고흥 땅을 지켰고 마침내 쑥섬으로 들어와 주민들과 함께 정원을 가꾸었다. 쇠락해 가는 섬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오해와 음해를 받기도 했고, 그래서 긴 시간 동안 막막함에 힘들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부부는 산밭의 잡초와 칡넝쿨을 제거하고 꽃을 심으며 견뎌냈다.
쑥섬은 면적 0.32㎢에 10여가구 사는 아주 작은 섬이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300명이 넘게 살았고 어업이 발달해 인근에서 가장 부유한 섬으로 이름났다. 어업을 하는 섬 주민들이 돈을 가마니에 담고 다닐 정도로 돈을 잘 벌어 돈섬이라고 불렸다.
쑥섬에만 조기잡이 중선배가 40척이나 있었는데 그 배로 머나먼 연평도까지 가서 조기를 잡아오기도 했다. 바다에서 번 돈으로 육지에 논을 사서 소작을 줄 정도였다. 그래서 육지 사람들도 제법 부자가 아니면 쑥섬으로 딸을 시집보낼 생각을 못할 정도로 대단한 위세를 떨쳤다.
연안 어장에서 더 이상 물고기가 잡히지 않고 어업이 쇠퇴하면서 쑥섬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쇠퇴해 소멸 직전까지 갔던 쑥섬을 다시 살린 것이 김상현 선생 부부가 만든 정원이다. 이 어찌 꽃보다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겠는가.
쑥섬에는 백섬백길 26코스인 애도꽃정원길이 있다. 애도항을 출발해 당숲과 쑥섬 정원, 등대를 지나 다시 애도항으로 돌아오는 2.4㎞의 짧은 길이다.
고흥 여행에서는 나로도 우주센터와 함께 꼭 다녀가야 할 필수 코스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