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빠른 것보다 편안한 것이 좋다”
최근 뜨는 열쇳말 ‘편안함’ … 르무통 안다르 본죽 등 ‘천천히’ 앞세워 소비자 공략
유통업계 소비 공식이 바뀌고 있다. 한때 Z세대를 상징했던 ‘할매니얼’ 열풍이 전통 간식과 복고 감성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먹고 입고 걷고 쉬는 일상 전반에서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하고 있다.
유행을 좇기보다 스스로의 컨디션을 관리하고, 과도한 자극보다 안정감을 선택하는 소비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흐름이 ‘논나맥싱’(Nonna maxxing)이다.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논나'(Nonna)와 극대화를 의미하는 ‘맥싱'(maxxing)의 합성어로, 자연스러운 삶과 느린 일상, 건강한 식사, 편안한 옷차림, 조용한 산책 등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려는 생활 방식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조용한 걷기’ 열풍과 맞물려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경쟁하듯 기록을 측정하거나 운동 성과를 자랑하기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걷는 것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Z세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정보와 자극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몸이 실제로 느끼는 편안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도 기능이나 가격 경쟁을 넘어 ‘편안함’ 자체를 상품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신발과 의류는 물론 식품 뷰티 생활용품까지 ‘몸이 편한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들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가장 먼저 변화가 두드러지는 분야는 신발이다. 걷기 문화 확산과 함께 발의 피로를 줄여주는 편안한 신발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르무통은 최근 라이프스타일별 신제품 ‘워크’(WALK) ‘이지’(EASY) ‘에브리데이’(EVERYDAY)를 선보였다. 메리노 울 소재와 자체 개발 원단을 적용해 장시간 걸어도 발이 편안한 착화감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 로퍼 형태 ‘에브리데이’는 출근과 일상을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벨크로 방식 ‘이지’는 신고 벗기 편하도록 설계했다. 통기성을 강화한 ‘워크’는 여름철 장시간 보행에도 쾌적함을 유지하도록 했다. 르무통은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전국 주요 도시와 일본 도쿄 등에서 고객 참여형 ‘산책회’를 운영하며 브랜드 철학인 ‘걷는 즐거움’과 ‘편안함’을 함께 전달하고 있다.
의류 시장도 같은 흐름이다. 몸을 압박하는 기능성 의류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실루엣이 인기를 얻고 있다. 안다르는 운동복과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애슬레저 스타일을 앞세워 편안한 착용감을 강조하고 있다. 신축성이 뛰어난 원단과 부담 없는 실루엣을 적용해 운동은 물론 출근과 여행,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입을 수 있는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활동성과 착용감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디자인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요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부디무드라 역시 여유로운 실루엣과 경량 소재를 적용한 조거팬츠와 상의를 통해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편안한 착용감을 강조하고 있다. 생활 방수 기능과 신축성을 더해 실용성까지 높였다.
먹거리 역시 ‘편안함’이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떠올랐다. 과거에는 맛과 포만감이 우선이었다면 최근에는 속이 편한 음식,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식사가 주목받는다. 대상 청정원의 ‘콩담백면’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최초 두유 기반 대체면으로 글루텐과 당류 부담을 줄였으며, 삶을 필요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어 간편성도 갖췄다. 밀가루 섭취를 줄이려는 소비자와 건강한 식단을 원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열량은 일반 면보다 크게 낮추면서도 탱글한 식감을 구현했고, 다양한 간편식 라인업을 통해 일상식으로 활용도를 넓혔다.
본죽도 편안한 식사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죽은 오랫동안 환자식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부담 없는 한 끼와 건강식으로 소비층이 확대되고 있다. 본죽은 전복죽과 쇠고기야채죽 등 대표 메뉴뿐 아니라 계절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며 바쁜 직장인과 젊은 소비자까지 고객층을 넓히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맛과 소화 부담이 적은 식사가 ‘건강한 한 끼’를 원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회복과 휴식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아로마테라피 브랜드 아로마티카는 천연 에센셜오일을 앞세워 산책이나 운동 후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웰니스 문화를 제안하고 있다. 편백오일과 프라고니아, 스윗 마조람 등 다양한 에센셜오일은 향을 통한 심리적 안정과 휴식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이처럼 편안함은 더 이상 특정 제품의 기능이 아니라 소비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가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경기 침체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소비자는 화려한 경험보다 몸과 마음이 안정되는 소비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행을 과시하기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찾고, 강한 자극보다 지속 가능한 편안함을 선택하는 소비가 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유통업계에서 주목받는 제품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분명하다. 오래 걸어도 발이 편한 신발, 몸을 조이지 않는 의류, 속이 부담 없는 식사, 심신의 긴장을 풀어주는 웰니스 제품들이다. 결국 ‘편안함’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소비자의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는 단순히 좋은 제품보다 자신의 일상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제품을 선택한다”며 “편안함은 신발과 의류, 식품을 넘어 생활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장 중요한 소비 키워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