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칼럼
AI 시대, 창발성 그리고 대학
우리나라는 장마에 들었고 세계에서는 월드컵이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32강에도 오르지 못했으니 관심을 가지기는 힘들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스포츠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카보베르데라는 생소한 나라의 축구팀이 디펜딩 챔피언과 연장전 승부를 펼치는 장면은 인간 승리의 드라마였다. 꼭 이겨야 드라마인가, 이 정도면 충분히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축구는 팀 스포츠이면서 개개인의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이들의 성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는 창발성에 주목한다. 창발성이란 각 요소들이 따로따로 가지지 못하지만 합쳐졌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특별한 성질을 말한다.
생명의 기본 분자 중 하나는 물이다. 물이 없으면 생명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이 모여 있을 수도 없고 활성을 가질 수도 없다. 외계행성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으려 할 때 물의 존재를 추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면 물 분자 하나는 수소 두 개와 산소 하나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아주 단순한 물질이다. 그런데 이런 작은 분자들이 힘을 합쳤을 때 놀라운 성질을 보이면서 생명의 용매로 거듭난다. 물 분자들이 이웃한 다른 물 분자들과 수소 결합을 함으로써 끓는점과 녹는점이 높아지게 되고 얼음이 물에 뜨는 현상, 높은 비열과 표면장력 등 대부분의 특성을 드러나게 만든다. 물은 단순한 분자구조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인 상호작용 덕분에 생겨난 창발성으로 생명유지와 지구환경에 필수적인 성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창발성이 생명의 근원이다.
상호작용 통한 창발성이 새로운 경지 열어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합쳐져서 힘을 낼 수 있는 예는 차고 넘친다. 최근에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을 초청해 ‘과학기술과 법’이라는 주제의 특강을 개최한 적이 있다. 이 강연에서 문 전 재판관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클로드 개발사 앤트로픽의 공동 창업자들을 언급했다.
창업자 아모데이 남매 중 다리오 아모데이는 물리학 생물물리학 신경과학을 전공했고, 다니엘라 아모데이는 영문학 정치학을 복수 전공했다. 또 다른 공동창업자 잭 클라크는 영문학 전공이었고 제러드 캐플런은 이론물리학 박사다. 인문학 전공자와 컴퓨터 전공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기 때문에 클로드라는 대작의 탄생이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요소들이 단순히 합쳐진다고 새로운 창발성이 어디서나 생길까? 당연히 조건이 있을 것이다. 물분자를 다시 살펴보면 수소와 산소라는 이질적인 원자가 합쳐져서 전기적인 불균형이 생기는 것이 중요한 출발선이 된다. 이런 근원적인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주변 분자들과 수소 결합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창발성이 생기게 된다.
레고를 보면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진 조각들이 합쳐질 때 제대로 된 멋진 큰 그림이 그려진다. 클로드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물리학자들이 인공지능의 개발 능력은 탁월하다고 하나 사람을 중심에 둔 인공지능은 인문학 전공자들과의 협업으로 가능했었던 것이다. 이 또한 내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보완의 방법으로 외적인 협업 또는 상호의존을 함으로써 창발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다.
다시 카보베르데 축구팀으로 돌아가 보자. 각각의 선수들은 아마도 디펜딩챔피언 팀의 선수들보다 부족할 것이지만 그들이 서로의 부족을 메꾸어가는 협력을 해 냄으로써 새로운 팀을 만들어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힘을 합쳐서 창발성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를 잊지 말자. 바로 비를 만드는 응결핵과 같은 존재다. 수증기는 혼자서는 물방울이 되지 못하고 이질적인 물질인 응결핵이 있어야 한다. 축구팀으로 보면 주장일 수도 있고 감독일 수도 있겠다. 선수들이 따로 놀 수도 있고 유기적으로 창발성을 드러내면서 예술 축구를 할 수도 있다. 요컨대 각 요소들도 중요하고 그들을 묶어주는 힘도 똑같이 중요하다.
축구팀만 그럴까. 대학을 예로 들어보자.대학이 수많은 별들이 바짝이는 하늘과 같다고 할 때 각자 빛날 것인가, 그에 더해 은하수와 같은 아름다운 장면을 보일 것인가는 응결핵과 같은 대학 리더십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대학이 대한민국 성장에 핵응결 역할해야
무한정 에너지와 물을 생산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시대를 휩쓸고 있는 AI 세계가 무한정 확장 성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반도체 칩 하나는 단순한 전자 부품이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와 물, 희귀자원을 응축해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성장 곡선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고 경쟁은 극단적이 될 것이다.
그때 누가 살아 남을까. 아마도 창발성을 가진 집단이 아닐까.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지성을 발휘할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AI 시대의 끝에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을 통한 창발성만이 답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절실한 마음으로 AI 너머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대학이 응결핵의 역할을 해야 한다. 2026년 대한민국 전체가 AI 생산기지화하여 달려나갈 것으로 보이기에 더욱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