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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분의 근원, 정체성 충돌

2026-07-08 13:00:07 게재

한동안 정치학자들을 괴롭혀 온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가? 정치학자들이 도달한 해답은 어느 정도 명확했다.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정체성’이었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경제적 실익이 없음에도 줄곧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결정적 이유도 박정희를 매개로 형성된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그 정체성을 벗어나면 종종 배신으로 간주되었다.

요즘 여권 내분을 둘러싸고 온갖 다양한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다. ‘명청대전’이 정치 기사의 키워드로 떠올랐고, “증축하랬더니 재건축을 했다”는 표현이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어느 방송인은 이재명 대통령 코어 지지층의 이탈을 언급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 모든 현상의 근원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대통령과 민주당 전통 지지층 사이의 정체성 충돌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좌우 이념 대결을 낡은 구도로 간주하고 탈진영 실용주의를 앞세우면서 모두의 대통령을 표방했다. 민주당 전통 지지자들은 이 대통령의 행보를 표를 더 얻기 위한 수단 정도로 가볍게 치부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 이 대통령은 탈진영 실용주의가 자신의 정체성 기반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재명 실용주의와 지지층 진영논리의 충돌

문제는 이 대통령의 새로운 정체성과 민주당 전통 지지자들의 정체성이 확연히 다르다는 데 있다. 두 가지만 살펴보자. 이 대통령은 탈진영을 강력히 추구하고 있지만 전통적 지지층 안에서는 진영논리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기업들과의 적극적 협력을 추구하면서 시장친화적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전통적 지지층 안에서는 반시장주의 기류가 여전히 강하다.

정체성이 다르면 하나로 융화되기 어렵다. 언제 어떤 형태로 충돌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 충돌은 이미 표면화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할 수 있는지는 지나온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노무현정부 시기 한미FTA 이슈를 둘러싸고 지지자들은 크게 분열했다. 민주화운동 경험을 공유한 전통적 지지층 다수가 한미FTA 반대 입장을 취했다. 찬반으로 갈라진 갈등은 본질적으로 정체성 대립이었다.

상징적 지점으로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대립을 들 수 있다. 한미FTA 찬성론자들은 스크린 쿼터 폐지로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벌여야 영화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한미FTA 반대론자들은 스크린쿼터 유지로 국가의 보호 육성을 통해 영화산업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한미FTA를 둘러싼 대립은 엄청난 후유증을 낳았다. 분열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사태는 노무현정부의 국정운영동력 상실로 이어졌다. 노무현정부는 시종 우왕좌왕했고 결국 민심 이반이 심각해지면서 재임 기간에 여당이 해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적 파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재인정부는 과거 실패를 곱씹으면서 학습 효과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전통적 지지층의 정체성과 충돌을 최대한 피했다. 그러나 결국 전통적 지지층의 정체성 안에 자신을 가두고 말았다. 주요 경제 정책에서 줄곧 시장과 대결하는 자세를 취했다. 결과는 연전연패로 나타났고 문재인정부는 민심 이반으로 1987년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내주었다.

역사는 전통적 지지층을 무시하고 움직인 노무현식도 전통적 지지층 안에 자신을 가두는 문재인식도 모두 답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이 대통령의 새로운 정체성은 문재인정부 실패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 정통 지지층이 이 대통령에 맞추어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게 정답일 수 있다.

이해당사자 녹여낼 새 정체성 만들 수 있을까

문제는 지난한 민주화운동을 통해 정립된 전통 지지층의 정체성이 너무도 견고하다는 데 있다. 달리 표현하면 이들의 완고함이 극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지지층 스스로 정체성의 변화 재정립을 통한 문제 해결은 기대 난망이다.

문제는 전통적 지지층과 이 대통령, 상당한 시장 세력 모두를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 기반을 구축할 때 해결될 수 있다. 이재명정부의 명운이 걸려 있는 사활적 과제다. 답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박세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