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환경과학 이야기
환경이 생물을 만들까, 생물이 환경을 만들까
초파리와 생쥐가 고른 빛이
무너진 생체리듬을 되살려
우리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일까, 아니면 우리가 환경을 만드는 걸까.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생물학이 내놨다. 작은 초파리 한 마리의 행동을 통해 스스로 무너진 생체리듬을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3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의 논문 ‘초파리는 환경을 능동적으로 조성해 스스로 일주기 시계를 재가동한다’에 따르면, 빛에 갇혀 생체리듬을 잃었던 초파리도 스스로 명암 환경을 선택할 수 있게 되자 자기 힘으로 그 리듬을 되찾아냈다.
독일 뮌스터대학의 스타네브스키 교수팀은 초파리가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실험 장치를 만들었다. 초파리는 지속적인 빛 아래 놓이면 핵심 시계 단백질이 계속 분해되며 생체리듬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도피처 없이 빛에만 노출된 초파리는 이틀 만에 리듬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실험장치 절반에 그늘을 만들어주자 상황이 달라졌다. 개체의 60~80%가 무너졌던 리듬을 스스로 되찾거나 유지한 것이다. 이들은 그늘과 빛의 경계를 주기적으로 넘나들며 자기만의 명암주기를 새로 만들어냈다.
회복된 생체리듬은 27~29시간으로 평범한 암흑 조건(24.3시간)보다 오히려 길었다. 뇌를 들여다보니 리듬을 되찾은 초파리는 시계 단백질(PER)이 활동기와 비활동기에 따라 뚜렷하게 오르내렸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이 아니라 몸속 분자 시계까지 실제로 재가동됐다는 뜻이다. 리듬을 되찾은 초파리는 수면의 질도 함께 좋아졌다. 잠이 덜 끊기고, 한 번 잠들면 더 오래 잤다. 반면 같은 조건에서도 리듬을 되찾지 못한 개체는 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한 현상은 생쥐에게서도 확인됐다.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의 논문 ‘자가조절 주변광 강도에서 생쥐의 연장된 일주기 리듬’에 따르면, 코로 누르는 동작만으로 조명 밝기를 4단계로 직접 조절할 수 있게 하자 생쥐는 곧 그 방법을 학습해 스스로 자신의 빛 환경을 만들어가며 살았다. 그 결과 자유주행 일주기는 24.5±0.4시간으로, 완전한 어둠 속에 그냥 놓아뒀을 때보다 약 1시간 길어졌고 이 상태가 최소 30일간 유지됐다. 조도 변화는 운동량 변화보다 평균 8분 앞서 나타났다. 생쥐가 어두워진 환경에 반응해 움직인 게 아니라, 움직이기에 앞서 스스로 불을 껐다는 뜻이다.
결국 생쥐도 초파리도 외부에서 정해준 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에게 맞는 명암 유형을 직접 설계했고, 그렇게 스스로 만든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하고 건강한 생체리듬을 되찾았다. 실험자가 강제로 부여한 조건보다, 스스로 선택한 조건이 더 자신에게 맞았던 셈이다. 환경이 생물을 만드는 동시에, 생물도 환경을 만드는 순환의 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들 연구 결과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