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의회 내 최대 우군 잃었다
린지 그레이엄 별세로 타격 공화당 강경파 구심 사라져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NBC, CN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레이엄 의원의 죽음을 “정말 끔찍한 상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민주당과 문제가 생기면 그레이엄이 해결할 수 있었다”며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 인물”이라고 회고했다.
이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레이엄 의원을 얼마나 중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공화당 내에서 강경 보수 성향으로 분류됐던 그레이엄 의원은 동시에 민주당 의원들과도 폭넓은 인맥을 유지한 보기 드문 정치인이었다. 외교·안보 문제에서는 초강경 노선을 유지했지만 의회 협상 과정에서는 상대 진영과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화당 인사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레이엄 의원의 관계는 처음부터 우호적이지 않았다.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했고, 트럼프 역시 그레이엄을 조롱하며 공격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뒤 관계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레이엄 의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적극 지원했고, 특히 사법부 인선과 국가안보 정책에서 핵심 조력자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사우스캐롤라이나 유세에서 “경선 이후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며 “상원의 누구보다 나를 도와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레이엄의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졌던 분야는 외교·안보였다. 그는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에 대한 강경 정책을 꾸준히 주장하며 공화당 매파 진영을 이끌었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가장 적극적인 지원론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특히 그는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전통적 안보 보수세력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노선과 공화당 주류의 강경 안보 노선 사이에 간극이 있을 때마다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근에는 이란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견제 정책 등을 둘러싸고 트럼프 행정부를 의회 차원에서 지원하는 데 앞장섰다. 비록 우크라이나 전쟁 해법을 놓고는 트럼프 대통령과 일부 견해차를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그레이엄 의원의 부재는 시기적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전망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은 경제, 이민, 외교 정책을 둘러싼 민주당의 공세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대외정책과 재정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 원로이자 협상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던 인물이 사라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그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고 말한 것도 단순한 개인적 친분 이상의 의미로 해석된다.
정치전문매체들은 그레이엄 의원의 별세가 단기적으로는 상원 공화당의 결속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법에 따라 후임 상원의원이 임명될 가능성이 높아 의석수 자체의 변화는 제한적이지만 수십 년간 축적된 정치적 영향력과 협상력까지 대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그레이엄 의원 사무실은 1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그레이엄 의원이 지난 11일 저녁 짧고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