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사건’ 수사, 지휘부 향한다
증거인멸 넘어 ‘일반 살인’ 판단 규명 … 형사과장 조사·청장실 압수수색
‘장윤기 사건’을 둘러싼 경찰 수사가 지휘라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별수사단은 증거인멸과 유착 의혹 규명을 넘어 장윤기에게 왜 일반 살인 혐의가 적용됐는지, 그 판단이 어떤 보고와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전날 사건 당시 광산경찰서 형사과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장윤기 검거부터 검찰 송치까지의 경위와 혐의 적용 과정, 보고 체계 등을 조사했다. 형사과장은 수사팀과 경찰서장을 잇는 실무 책임자로 꼽힌다.
특별수사단은 앞서 광주경찰청장실과 수사부장실, 강력계장실, 광산경찰서장실, 형사과장실 등 수사 지휘라인 사무실 7곳을 압수수색했다.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뒤 광산경찰서장과 광주경찰청장도 차례로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압수수색 대상이 청장실과 수사부장실, 서장실까지 확대된 것은 증거 확보를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특별수사단은 당시 수사팀이 확보한 성범죄 관련 정황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고, 각 단계에서 어떤 검토와 판단을 거쳐 최종 혐의가 결정됐는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이번 수사는 개별 수사관의 판단을 넘어 경찰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복원하는 작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반 살인’ 판단, 누가 내렸나 = 특별수사단은 차량에서 발견된 케이블타이와 블랙박스 영상, 프로파일러 의견 등 성범죄 목적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는데도 일반 살인으로 사건이 송치된 배경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수사팀의 판단이었는지, 형사과장과 경찰서장, 나아가 광주경찰청 지휘부까지 논의를 거쳐 결정된 것인지를 규명하는 것이 이번 수사의 핵심이다.
특별수사단은 광산경찰서장이 주요 수사를 직접 지휘했고, 수사팀장이 강간 목적 살인 혐의 적용 의견을 제시했지만 반대에 부딪혔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광산경찰서장은 “형사과장으로부터 정황 증거만으로는 강간 목적 살인 적용이 어렵고 일반 살인으로 송치하겠다는 보고를 받았을 뿐, 강간 목적 살인 적용을 막은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특별수사단도 현재까지는 서장이 직접 적용을 막았다는 구체적인 진술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휘 체계 복원에 수사력 = 이번 수사는 증거인멸 의혹에서 출발했다. 경찰은 당시 수사팀장을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했고, 장윤기의 아버지인 현직 경찰관과 수사팀 간 유착 의혹도 조사하고 있다. 장윤기 아버지가 범행 직후 리얼돌과 휴대전화 등 성범죄 관련 증거를 폐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사는 개별 행위를 넘어 경찰 조직의 보고·지휘 체계 전반으로 확대됐다.
특별수사단은 장윤기 아버지와 수사팀 간 통화 내용, 부모 접견 과정에서 편의 제공 여부를 조사하는 한편 압수수색 자료를 토대로 보고와 지휘 체계를 복원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검찰도 별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광주지검은 광산경찰서장과 형사과장 등을 입건하고 광산경찰서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장윤기가 범행 전 차량 문을 미리 열어두고 케이블타이를 준비한 점 등을 토대로 강간 목적 범행 여부를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찰이 확보하지 않았던 케이블타이는 이후 장윤기 아버지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3일 오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두 번째 공판에서 장윤기는 강간 목적으로 피해 여고생을 살해했다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검찰은 리얼돌 관련 감정 결과와 케이블타이,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 보완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혐의 입증을 이어갈 방침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 등 살인죄는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 일반 살인죄보다 무겁다. 재판부는 사건의 잔혹성과 피해자 보호 등을 고려해 이날 재판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검찰이 제출한 영상 증거 등을 심리했다.
장윤기가 법정에서 강간 목적 범행을 인정하면서, 사건 발생 당시 성범죄 관련 정황에도 일반 살인 혐의로 사건을 송치한 경찰의 판단이 적절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