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원의 미국 톺아보기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의 약진과 미국 정치의 향방
민주사회주의 성향 후보들의 약진은 최근 미국 정치에서 가장 주목받는 변화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난달 민주사회주의자 제니스 루이스 조지는 워싱턴 D.C. 시장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하며 사실상 11월 본선 승리를 예약했다. 이어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의 지지를 받은 민주사회주의 성향 하원의원 후보 3명이 뉴욕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기득권의 지원을 받던 현직 및 주류 후보들을 잇달아 꺾었다.
또 다른 민주사회주의 후보인 키로스가 콜로라도 연방하원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29선에 도전하던 현역 의원 드게트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키로스는 드게트가 의회에 입성한 이후에 태어난 29세 정치 신인으로 이번 승리는 민주사회주의 세력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진보성향 강한 대도시서 민주사회당 약진
이처럼 민주사회주의 성향 후보들은 뉴욕, 워싱턴 D.C., 덴버 등 진보 성향이 강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잇따라 승리하며 민주당 내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맘다니가 올해 1월 뉴욕시장에 취임한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위스콘신으로 향하고 있다. 싱글맘으로 주방 보조와 조리업무를 하며 생계를 이어온 홍은 민주사회주의를 내세워 위스콘신 주지사 선거에 도전하고 있다.
위스콘신은 민주·공화 양당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표적인 경합주로, 중도·무당층 유권자의 표심이 승패를 좌우하는 지역이다. 홍의 출마는 오는 8월 11일 민주당 예비선거를 앞두고 민주사회주의가 진보 성향 대도시를 넘어 경합주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의 배경에는 미국 최대 사회주의 단체인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이 있다. 이들 후보는 경제적 불평등과 기성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지를 얻었다. 동시에 이민자 추방 중단,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 중단 등 민주당 지도부가 부담스러워하는 정책들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기존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사회주의자라는 단어는 미국 정치에서 여전히 강한 정치적·이념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민주사회주의 성향 정치인들의 잇따른 선거 승리를 “미국 건국 이후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통제할 수 없는 암”에 비유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결국 미국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저지주의 조쉬 고트하이머 연방하원의원은 “사회주의자는 민주당원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자본주의자다”라고 강조했다. 온건 성향의 민주당 하원의원들도 공동서한을 통해 민주당이 민주사회주의와 동일시될 경우 당 전체가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비칠 수 있으며, 경합주와 중도성향 선거구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사회주의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미국 현대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주사회주의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샌더스 상원의원은 “우리는 오랫동안 추구해 온 정치혁명의 문턱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내 진보진영을 결집시키며 의료 복지 노동 부유세 등 여러 의제를 당의 중심 논쟁으로 끌어올렸다.
‘민주당 내부를 바꾸자’로 전략 전환
역사적으로 보면 현대 미국 민주사회주의는 오래된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과거와 다른 중요한 변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당 내부에서 권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조지타운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자 진보 성향 잡지 전 편집장인 마이클 카진은 “대규모 사회주의 조직의 거의 모든 후보들이 독자 정당이 아니라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새로운 실험이다. 과거처럼 제3정당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기보다 민주당 안에서 세력을 키우고 장기적으로 당의 노선을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접근은 혁명적 방식은 아니지만 2024년 대선 패배 이후 지도력이 약화된 민주당에는 훨씬 현실적이고 위협적인 도전이다. 이제 민주당 지도부는 당내 좌파 세력의 성장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최근 민주사회주의 성향 후보들의 잇따른 승리는 사회주의 사상이 갑자기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수십 년 동안 제3정당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었던 사회주의 운동이 민주당이라는 기존 정치 구조 안으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민주사회주의의 방향을 바꾼 인물이 해링턴이었다. 1982년 DSA를 공동 창립한 해링턴은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대신 민주당 내부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당의 정책과 노선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이를 가능한 좌파라고 불렀다.
그러나 사회주의 운동은 긴 침체기를 맞았다. 냉전이 끝나고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자본주의는 사실상 세계적 승리를 거두었고, 미국 사회에는 개인주의와 시장경쟁이 지배적인 가치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 초 DSA 회원수는 약 50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운동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전환점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금융위기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냈고, 월가와 대기업에 대한 불신을 크게 키웠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취업난을 겪은 밀레니얼 세대는 기존 정치보다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자신을 민주사회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샌더스 상원의원이 그 중심에 섰다.
2016년 민주당 대선 예비선거에서 샌더스는 예상 밖의 돌풍을 일으켰다. 냉전 시대의 반공주의보다 경제적 불평등과 주거·교육비 부담을 더 절실하게 느끼는 젊은 세대와 무당층 유권자들이 그의 핵심 지지층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맘다니와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비롯한 새로운 세대 민주사회주의 정치인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독자 정당이 아니라 민주당 예비선거를 통해 당선되며 민주당 내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최근 뉴욕 콜로라도 워싱턴D.C. 등에서 이어진 민주사회주의 후보들의 승리 역시 같은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민주당의 새로운 시험대
DSA의 성장은 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실망감에서도 동력을 얻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학 공동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원과 민주당 성향 무당층의 절반 이상이 당의 현재 방향에 답답함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많은 유권자는 단순히 트럼프 이전의 정치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불만을 자신들의 정치적 기회로 보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인들은 경제 불안과 전쟁,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신을 반복적으로 표출해 왔다. 공화당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트럼프와 MAGA 운동으로 이어졌다면, 민주당에서는 현직 의원들을 민주사회주의 성향 후보들로 교체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중도파는 이에 맞서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를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은 과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NORC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의 절반 이하만이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0년 전보다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는 크게 낮아졌다.
결국 사회주의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이념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경제와 정치 시스템이 더 이상 자신의 삶을 개선해 줄 수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존 체제가 막다른 길처럼 보일 때, 민주사회주의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한다. 바로 지금 미국 정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변화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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