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전기 만들어도 못 보내’…송전망 병목이 전력생산 발목

2026-07-14 13:01:2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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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메가프로젝트로 전력수요 더 늘어, 송전망 보강 시급

동해안#1~신가평 송전선, 2009년 착수후 아직 준공 못해

정부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피지컬 로봇 등을 중심으로 한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전력계통의 안정성이 다시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AI 산업 확대로 전력수요는 급증할 전망이지만 정작 생산된 전기를 수요지까지 전달할 송전망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4년 국회입법조사처와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발표했던 두 건의 연구자료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보고서는 송전망 부족이 단순한 전력산업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전기요금, 에너지 안보를 좌우할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당시에는 미래 위험에 대한 경고로 여겼지만 AI 시대가 본격화된 지금 현실이 됐다는 평가다.

◆발전소 건설과 송전선 건설 속도의 차이 = 14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국내 전력계통의 가장 큰 특징은 발전소와 전력 소비지가 서로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원전과 석탄화력,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대규모 태양광 설비는 동해안과 충남 전남 등에 집중돼 있는 반면 전력 소비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수도권은 전국 최대 전력 소비지역이지만 자체 발전량은 태부족하다.

결국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 나를 초고압 송전망이 충분히 구축돼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또 정부가 서남권(호남) 신규 반도체단지 조성을 공식화하면서 이 지역의 전력수급도 중요 과제로 부상했다.

문제는 발전소 건설 속도와 송전망 건설 속도의 차이다.

발전소는 수년이면 건설할 수 있지만 송전선은 주민 수용성과 환경영향평가, 인허가 절차 등을 거치면서 10~20년 이상 걸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신재생 발전설비 구축 기간보다 발전소 건설기간이 길고, 송전선 건설은 이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고 지적했다.

대표 사례가 동해안#1~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HVDC) 사업이다. 이 사업은 2009년 착수 당시 2019년 준공을 목표로 했지만 송전선로 입지 선정 지연과 주민 반대 등으로 일정이 수차례 미뤄지면서 현재는 2026년 10월 준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경북 울진에서 경기 가평까지 약 230㎞를 연결하는 이 사업은 총 440기의 철탑을 건설해 동해안 원전과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핵심 국가사업이다. 그러나 착공 이후 17년 만에야 준공을 기대하는 상황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해안#2~동서울 HVDC, 동두천C/C~양주, 당진T/P~신송산 등 주요 송전선로 사업들도 당초 계획보다 수년씩 지연되고 있다. 발전설비는 속속 준공되고 있지만 이를 연결할 송전망은 제때 구축되지 못하면서 계통 병목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는 모습이다.

◆태양광 출력제어, 2023년 2건에서 2025년 상반기 44건 = 송전망 부족은 발전제약(Curtailment)의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발전소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지만 송전망이 이를 받아주지 못해 발전량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출력제어가 반복되는 실정이다.

한국전기연구원은 ‘국내 전력계통 현안과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2024년 기준 동해안 지역에서 약 6GW 규모의 발전제약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원전 약 6기가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전력에 해당하는 규모다.

연구원은 동해안 HVDC가 구축되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향후 신규 원전과 재생에너지 설비가 계속 늘어날 경우 추가 대책 마련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발전제약은 재생에너지에서도 빠르게 늘고 있다.

전력거래소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태양광 출력제어는 2023년 2건(286MWh)에 불과했지만 2024년에는 26건(7899MWh)으로 급증했다. 2025년 상반기에는 이미 44건, 6만4057MWh를 기록하며 전년도 전체 규모를 크게 넘어섰다.

이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생산된 전력을 적시에 수요지로 보내거나 계통이 흡수할 능력이 부족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송전망 부족이 전기요금까지 끌어올려 = 송전망 부족은 발전소 이용률 저하에만 그치지 않는다. 결국 전기요금과 전력시장 전체 비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전력망 부족에 따른 경제적 손실’ 보고서에서 동해안에서 생산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전·석탄 발전을 수도권으로 충분히 보내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발전단가가 높은 LNG 발전을 더 많이 가동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계통한계가격(SMP)이 상승하고 한국전력의 전력구입비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이다.

경제적 손실 규모도 상당하다.

보고서가 인용한 기존 연구에서는 송전선이 완공될 때까지 민간 발전사의 손실은 약 2조원, 한국전력의 추가 정산차액 부담은 최대 28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발전회사만의 손실이 아니라 결국 전력시장 전체 비용 증가와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한국, 평상시에도 비상송전 … 계통 운영방식 손봐야 = 국회입법조사처는 송전망 부족과 함께 현재의 전력계통 운영방식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사실상 평상시에도 ‘N-2’ 수준의 엄격한 신뢰도 기준을 상시 적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N-2는 송전선이나 주요 설비 두 곳이 동시에 고장 나더라도 전력계통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기준이다.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재화를 할당하는 사례에서도 정상시(평시)에는 시장에 의한 재화배분을 하고, 비상시(전시) 정부에 의해 재화를 배급하는 체제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기 할당도 평소에는 평상적인 신뢰도기준(N-1)을 적용해 시장자율로 운영하다가, 폭풍 등 기상악화가 발생하는 비상시에 강화된 신뢰도기준(N-2)를 적용해 시장개입에 의한 자원배급을 실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계통 안정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평상시부터 극단적인 사고 상황을 가정해 발전출력까지 제한하는 현재 방식이 과도하다고 지적한 대목이다.

◆전력계통 효율성-탄소중립 조화가 과제 =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기저발전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전력구입비와 전력시장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계통 운영을 보다 유연하게 개선할 경우 경제적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추산했다. 2024년 계통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저발전원 1GW가 추가로 계통에 투입되면 계통한계가격(SMP)은 약 3.3원/kWh 하락하고, 발전 정산단가는 124.9원/kWh에서 121.4원/kWh로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른 전력시장 정산비용 절감 효과는 약 7801억원으로 추산됐다.

다만 보고서는 경제성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송전제약이 해소돼 석탄발전 이용률이 높아질 경우 연간 약 830만톤의 이산화탄소(CO₂)가 추가 배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제시했다.

전력계통의 효율성과 탄소중립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가 향후 정책의 핵심 과제라는 지적이다.

발전설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전기를 전달하는 송전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산업이 본격 확대되는 시점에서 송전망 병목은 발전제약과 전기요금 문제를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새로운 기반시설 위험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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