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의사결정이 흐르는 조직을 만드는 법
“그냥 해, 생각하지 말고.” 공무원 조직의 선배가 후배에게 자주 하는 조언이다. 이들을 두고 영혼 없이 일하는 공무원이라며 비아냥거릴 일은 아니다. 이 말은 맥락 없는 지시에도 잘 살아남으려는 실무자의 처절한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품은 ‘업에 대한 직업적 철학’과 조직의 업무 지시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충돌은 실무자들을 괴롭게 한다. 차라리 생각하기 버튼을 끄고 사는 편이 낫다는 걸 조직에서 암묵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런데 생각을 끄고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다가 사고가 터지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실무자의 몫이 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몰랐다’는 보스를 가리키며 ‘시킨 일을 했을 뿐!’이란 항변 대신 실무자들은 그 일을 방어할 말과 증거를 마련해야 한다. 그 일마저 잘 해내고야 만다. 지금 우리가 따져보아야 할 것은 실무자들의 생각 버튼을 강제 종료하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의 반대편에는 실행 대신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조직의 관리자 교육에선 사뭇 다른 장면이 반복된다. 그들은 ‘어떻게 실행할까’보다 ‘무엇을 선포할까’에 집중해 비전 제시에 필요한 내용만 노트에 받아 적는다. “저 달을 향해 가자!”라는 웅장한 비전과 “열정을 갖고 해봐!”라는 격려로 구성원들이 착착 움직일 거라는 리더들의 믿음은 공허하다. 비전이 목적지를 가리켜 선언하는 것이라면, 왜 그곳에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갈 것인지를 함께 나누는 토양은 ‘맥락’이다.
충주맨이 홍보에 성공한 비결
맥락이 주는 실질적 정보는 우리 두뇌가 달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작동하게 한다. 뇌인지과학 연구에 따르면 수동적으로 지시를 따를 때 주도성(agency)과 관련된 전전두엽 활성은 떨어지고, 불안회로는 더 쉽게 켜진다. 반대로 스스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다고 느낄 때, 자율성의 보상회로가 작동해 동기와 몰입에 유리하다. 실무자들이 조직에 열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먼저 그들이 도파민을 통해 자율적으로 열정을 태울 충분한 맥락을 조직이 제공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왜’를 알게 하는 맥락이 흐르는 곳에서 주도성을 갖고 자기 일의 주인이 된 사람이 충주맨이다. 정부 기관의 홍보문법을 파괴한 충주맨은 단순히 재기발랄한 개인이 아니다. 그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의사결정의 흐름’이다.
충주맨에겐 조회수와 홍보 효과라는 명확한 기준이 의사결정 맥락으로 작용했다. 기관장의 기호가 기준이었다면 그의 뇌는 상사의 반응을 예측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고 불안 회로가 작동했을 것이다. 공공조직의 오래된 형식 대신 ‘시민에게 실제 닿는 홍보 효과’를 기준으로 삼았고 자신의 판단이 곧 조직의 결정이 되었다. 주도성과 자율성의 보상 회로가 켜진 것이다.
넷플릭스의 ‘통제가 아닌 맥락으로 이끌어라(Lead with context, not control)’라는 구호는 이와 맞닿아 있다. 이 회사의 리더들은 구체적 지시를 하기보다 전략과 목표, 시장 가설, 위험 요소 등 데이터와 맥락을 공유하는 데 집착한다. 이런 문화에서 실무자는 스스로 네비게이션을 켜고 최선의 길을 찾아가는 주체가 된다.
리더 할 일은 실무자 일할 수 있는 토양 만드는 것
비즈니스 컨설팅 그룹 딜로이트의 2026년 예측 보고서 역시 인간과 AI 에이전트가 공존하는 조직에 반드시 ‘데이터-맥락-실행-경험’이라는 수직적 의사소통 지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딜로이트가 이론으로 제시한 이 프레임을 충주맨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현장에서 몸소 증명해낸 셈이다.
가장 아래 ‘데이터 지층’에서 충주맨은 대중의 반응 패턴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며 콘텐츠 감각을 축적했다. 뿌리가 뻗을 방향을 결정하는 ‘맥락 지층’에는 ‘시민에게 실제로 닿는 홍보 효과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실행 지층’에서는 ‘선 업로드, 후 보고’로 보여진 충주맨의 재량과 결정 빠른 구조가 힘을 발휘한다. ‘경험 지층’에서 충주맨의 성과는 내부 회의 결과가 아니라 조회수와 시민의 반응이라는 외부 결과로 증명되었고, 그것이 곧 누구나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피드백이 되었다.
충주맨의 재능은 허락된 토양에서 빛났다. 리더의 역할은 바로 그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실무자를 통제하는 대신 그들이 딛고 설 토양인 데이터를 고르고 뿌리가 뻗을 방향인 맥락을 정비해 공유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맥락을 이해하고 주도성을 가진 실무자의 뇌에서는 생각 버튼이 켜진다. 그때서야 그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정보를 가진, 일의 주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