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공적기능과 이해상충의 방지

2013-03-28 03:07:43 게재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했을 때 연방 연구기관으로부터 연구용역을 수주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용역계약을 위해서는, 보유하고 있는 주식 목록을 제출하고 이해상충이 없음을 확약하는 문건에 서명을 해야 했다. 사실 이런 요구가 불필요한 행정절차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수행했던 연구용역이 국가 기밀과 관련되었던 것도 아니고, 규모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정부의 고위 관료 인사와 정부조직 개편을 보면서, 공적 기능과 이해상충 방지의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공직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임명하면 전문성을 살려서 업무 수행을 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 특정 이해를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따라서 공무를 자신의 이해에 맞춰 수행할 위험도 존재하게 된다.

좀 극단적인 예를 생각해 보자. 조직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경찰청장에 조직폭력배 두목을 임명한다면 어떻게 될까? 조직폭력배 두목이야말로 조직범죄에 대해 가장 전문가일 것이다.

경찰청장이 된 조직폭력배 두목이 자신의 반대파 조직들을 공권력으로 와해시키면, 표면적으로는 조직범죄의 근절에 큰 진전을 이룬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 이런 정책집행으로 자신의 조직이 조직폭력배 세계를 통일하게 되면, 조직범죄 문제는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

재벌체제가 공직사회 오염시켜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이해상충이 있는 공직자는 정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이익과 부합되는 특정부문에 혜택을 주거나,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 고려해 정책을 결정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당분야 전문가이니 사익을 추구하면서도 비전문가인 일반인들이 볼 때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도 쉽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직자의 이해상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몇 가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제도를 통해 고위 공직자 후보의 전문성과 이해상충 문제를 검증하고, 고위 공직자 주식백지신탁제도를 통해 이해상충 문제를 해소하기도 한다. 또한 퇴직 후 일정기간 이해상충이 될 수 있는 곳에 취업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제도에도 불구하고,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 심각한 우리 현실에서는, 퇴임 이후를 생각하는 공직자의 이해상충 가능성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해상충의 중요성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점이다.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사퇴한 이후 주식백지신탁제도를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나, 이해상충 문제가 심각한 인물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로 내정했던 것이 이런 안이한 인식의 결과가 아닌지 우려된다.

선수가 심판 역할까지 하는 오류

이해상충 문제의 간과는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특히 새로이 출범하는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 분야의 R&D 자금 지원이라는 '선수' 기능과 지원 사업의 성과를 평가하는 '심판' 기능을 모두 가지게 된다.

또한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산업육성 정책이라는 '선수' 기능과 (사전적) 규제라는 '심판' 기능을 함께 지니게 된다.

박근혜정부의 일련의 인사 실패가 추천이라는 '선수' 기능과 검증이라는 '심판' 기능이 독립적이지 못해 발생했다는 지적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선수'가 '심판'을 겸하는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