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서기석 헌법재판관의 과거
박근혜 대통령은 17일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임명함으로써 출범 52일만에 내각 구성을 완료하였다. 출범 초기 기대가 컸던 박근혜정부는 인사 문제로 기대보다는 우려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제 국민들은 인사가 만사가 아니길 기원하는 심정일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제도는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검증하는 절차이다. 지금까지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인사들은 주로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 경우였다. 그에 반해 윤진숙 장관 후보자는 전문성 문제가 심각히 제기된 거의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당도 사실상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정도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가 불통을 넘어 인사청문제도의 취지조차 무시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윤진숙 장관 후보자의 자질 문제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서기석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 문제는 비교적 조용히 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윤진숙 장관 임명이 이뤄진 다음 날, 국회 법사위는 서기석, 조용호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서기석 후보자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이른바 삼성특검 사건 2심 담당 재판관이었다.
삼성특검사건 2심 담당 재판관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에서 삼성특검 사건 재판 가운데 최악의 판결로 서기석 재판부가 진행한 2심 재판을 꼽았다.
만약 삼성특검 사건의 2심 재판이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 판결이었고 불편부당한 법집행이 가장 중요한 법관의 자질과 도덕성이라고 믿는다면, 서기석 후보자야말로 자질과 도덕성에 가장 심각한 문제를 지닌 헌법재판관 후보자이다. 따라서 청문회 과정에서 삼성특검 사건의 2심 재판이 재벌 편들기 판결이었는지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필요했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고 주요 정책현안이라고 말하는 현 시점에서, 서기석 후보자를 지명한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하고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한 국회, 서기석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 문제를 외면한 언론과 전문가 집단을 보면서, 우리 정치, 언론, 사법부, 학계에 깊이 퍼져있는 재벌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경제민주화가 일시적 선거 구호였고 결국 선거 후에는 재벌의 영향력이 다시 어김없이 발휘될 것이라는 비관론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2심 판결로 더 힘을 얻고 있다. 항소심 법원은 15일 개인돈 1천억원을 공탁한 점을 참작해, 1년을 감형한 징역 3년 형을 김승연 회장에게 선고했다.
재벌 편들기 재판 아닌지 검증
징역 3년 형 다음에는 아마 집행유예 5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선 이전 재벌 총수들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이 슬그머니 다시 돌아오고 있다.
총수일가에 의한 사익편취의 대표적 수단인, 내부거래를 통한 터널링을 실효적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은 여야 대선 후보의 공통 공약이었고, 이런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국회 논의에 대해 대통령은 '경제민주화가 무리한 것 아닌지 걱정'이라는 언급을 했다. '신뢰'가 가장 큰 정치자산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라는 대선공약을 지킬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자조하는 국민이 없기를 소망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