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시장의 우상과 경제민주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일상 언어 사용에서 파생되는 편견과 선입견을 '시장의 우상'이라고 경계하였다. 특정 단어가 가지는 일상적 의미 때문에 전문용어로서 의미가 왜곡되는 현상은 후기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하버마스의 주요 연구주제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이런 '시장의 우상' 현상은 경제학 용어들에서 흔히 목격된다. 예를 들어, 경제학은 '효율성'만을 따진다는 비판을 듣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경제학 용어'로서 효율성과 투입 대비 산출 비율의 최대화라는 '일상적 의미'로서 효율성의 혼돈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경제학에서 '효율성'은 특정 제도나 정책을 사회후생의 관점에서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경제학 용어로서 '도덕적 해이' 또한 도덕적으로 해이해졌으므로 도덕 재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잘못 이용되기도 한다. '도덕적 해이'는 비대칭 정보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인데, 이런 '도덕적 해이' 상황은 도덕 재무장이나 다른 어떤 노력으로도 해소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를 완화하기 위해 적정한 유인 체계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함의를 지닌다.
전문용어의 개념과 일상 언어로서 의미의 혼돈은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런 혼돈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전문가와 언론의 올바른 역할이 필요하다.
재벌 문제 희석시키려는 시도
그런데 최근 경제민주화 논의를 보면, 자연스러운 시장의 우상 현상을 넘어 의도적으로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호도하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재벌과 재벌 옹호자들은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을 호도해, 재벌문제를 제외한 경제민주화 이슈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재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에 '대기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재벌은 '총수가 있는 대규모기업집단'을 의미하며, 대기업은 일정한 규모 이상인 개별 기업을 지칭한다. 따라서 이런 용어의 혼돈은 재벌문제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로 둔갑시킨다. 대기업-중소기업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재벌문제를 희석시키기 위해 대기업-중소기업 또는 '갑을 문제'를 이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개별 단어의 일상적 의미로 이해되기 어려운, 다소 전문적인 용어이다. 따라서 민주화라는 일상적 의미를 이용해 경제민주화의 참 의미와 관심을 왜곡하기 쉬울 수 있다.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우리 헌법 제119조 2항,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재벌해체나 독일 콘쩨른의 해체, 그리고 20세기 초 미국에서 록펠러 가문 등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한 진보적 운동 등에서 공통적이고 핵심적인 경제민주화의 목적은 '특정 가문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라는 소유집중의 해소에 있다.
특정 가문의 경제력 집중 해소해야
내부거래를 이용한 재벌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와 재벌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그리고 최근 CJ그룹사건에서 불거져 나오는 재벌의 분식회계, 배임, 횡령, 탈세, 차명거래 등은 특정 가문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 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재벌문제라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적이고 본원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피상적이고 대증적인 처방만으로는 한국 경제와 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